FEEL/읽기

사하라 사막 횡단기 (1996) / 윌리엄 랑게비쉐 저 / 박미영 역

felixwoo 2008. 4. 27. 17:50

모래 냄새가 나는 사막과 그 주변에 그냥 사는 얘기다. 낭만도 없고 재미도 없는 무미건조한 사막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얘기들과 전해오는 얘기들을 들려준다. 사막은 어떤 사람들에겐 막연한 동경심과 구도심을 자극한다. 아무 것도 얻을 것 없어 보이는 모래와 하늘, 뜨거운 햇살 과 차가운 어둠. 이게 한 세계일까?  보이는 장벽은 없어도 온 주위가 무서운 장애다.  낙타도 사막에서만 살 수 없다. 살아도 살았다 할 수 없는 땅이 건만 운명처럼 사는 사람들이 있다. 왜 거기에 사느냐? 묻지만 그들에겐 갈 곳이 없다.  

 

(책에서)

 

사하라는 우아함이란 씨가 마른, 무모함과 불운이 넘쳐나는 땅이다. 그렇다 해도 여행가방과 약간의 현금과 버스표와 무쇠처럼 단단한 불굴의 의지만 있다면 능히 접근할 수 있는 땅이다. 날 매료시킨 것도 이런 단순성이다. 이제 지중해에서 시작해 남쪽 사바나 초지를 지나 서쪽 대서양 연안으로 둥글게 반원을 그리며 사하라 사막을 가로질러 나아가리라……. 박테리아조차 생존할 수 없는 땅, 죽은 시체가 볕에 말린 대추야자처럼 쪼글쪼글하게 말라붙는 땅. 광대한 이 땅에서 철새들은 외로움에 못 이겨 친구를 찾아 사람들 곁으로 포르르 내려와 앉는다. --- p.18

모래사막 농부들은 일찌감치부터 모래를 다스리는 법을 배우며 자란다.
도시에서는 모래를 훨씬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도시인들 역시 모래를 삽으로 퍼내지만 그냥 버리지 않고 집으로 가져간다. 바닥에 두툼하게 깐 모래 위에 손수 짠 양탄자를 덮어서 푹신한 잠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정말 아름다운 모습 아닌가? 모래를 집 안에 끌어들임으로써 불청객 같은 모래의 침입을 포용하다니…….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모래 때문에 빵이 꺼끌거린다고요? 그냥 씹어 드세요.”
모래 묻은 빵은 사하라인들에게 인내라는 덕목을 가르친다. 엘우에드 사람들은 모래 속에서 기도를 올리고, 모래로 몸을 정갈하게 씻는다. 1년에 한 번 묵은 모래를 퍼내면서 자신이 떠안은 운명을 기꺼이 껴안고 산다. --- p.53

식수가 떨어졌을 때 궁여지책으로 마신 것이 바로 라디에이터 물이었다. 트럭 밑에서 3주란 긴 시간을 보냈건만 도통 개미 한 마리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가족에게 보내는 작별 편지를 쓰고는 차 아래 죽은 듯 누웠다.
조수가 슬픔에 겨워 눈물 콧물을 훌쩍거리자 락락이 짜증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힐난했다. “죽으면 죽는 거지, 뭐.”
그 말과 함께 그는 조용히 누워 다가올 죽음을 기다렸다.
라디에이터 물이 거의 바닥났을 즈음 문득 락락의 머릿속을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다.
‘트럭 탱크에 디젤 연료가 남아 있을 터이니 거기에 엔진오일을 부어 연소성 혼합물을 만들자!' --- p.75

뜨거운 사막에서 탈수증에 걸리면 우리 인체는 부족한 수분을 혈관에서 끌어오려고 기를 쓴다. 그 결과 피는 탁해지고 기능장애가 온다. 몸 안에서 생성된 열기를 제대로 바깥으로 배출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를 죽음으로 이끄는 것은 이 배출되지 못한 열기다. 체온이 급속하게 올라가면서 경련이 일면서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
라디에이터 냉각수가 바닥나자 벨기에 가족들은 걸신들린 듯 가솔린을 들이켜기 시작했다. 누구라도 이러했으리라. 이것을 전문 용어로 가솔린 마시기petroposia라 부르자. 사하라 본토박이들 역시 극한의 경우 배터리산(*물과 황산의 혼합물로서 배터리에 쓰이는 전해질-옮긴이) 대신 차라리 가솔린을 마시라고 권했다. --- p.206

인샬라, 신의 뜻대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인샬라’란 용어를 자주 접하게 된다. 이는 종교적 믿음을 상기시키는 일종의 공통된 문화적 행동 양식이라 볼 수 있다. 우리는 만나 차를 마실 것이다, 신의 뜻대로. 비가 오고 우리 목축업은 살아남을 것이다, 신의 뜻대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그 또한 신의 뜻이다.
서구인들은 이슬람의 무조건적인 운명론을 때때로 비난하지만 운명론은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게 도와주는 당의정 같은 것이다. --- p.349

이곳 모래 언덕에 콩나무를 심은 것은 실패작이었다. 모래가 계속 이동하면서 나무뿌리를 밖으로 드러내 서서히 말라 죽게 한 것이다. 곧 이것도 염소의 먹이가 되리라. 아이들에게 모래가 어느 방향으로 날아가고 있느냐고 물었다. 여기저기, 가리키는 방향도 제각각이었다. 다만 모래 언덕이 그 애들 집을 서서히 목 조르고 있다는 사실만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모래가 마을로 서서히 위협적으로 밀려들고 있었다. 태양은 뜨겁게 달군 불 망치로 메마른 대지를 사납게 두들겨대고 있었다. --- p.358

 

사하라는 잔인하지 않고 그저 무심했다. 이방인은 뱃고동 소리가 울리면 언제든지 이 땅을 떠날 수 있기에 사막을 견더낼 수 있다. 하지만 말리인은 그럴 수가 없다. ---p.3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