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머짓 몸 / 달과 6펜스
오랫동안 벼르던 소설을 읽었다. 고갱, 타이티, 원색, 인상파 등 내가 좋아하는 소설 소재라고 들은 바 있어 읽고 싶었지만 한동안 잊고 있었다. 근래 재자극의 계기가 있었다. 금년 설에 본 영화 'Painted Veil' 이었다. 이 영화의 원작자는 서머짓 몸이다. 그 영화는 영국의 귀족 굴레에 있는 사람들간의 허울과 엉킴을 수묵화 같은 중국의 깊은 산골 풍경을 배경으로 감동적으로 펼쳐냈다. 인간의 원초적인 심리 와 심성을 섬세하고 표현하고 모순과 허구를 날카롭게 찌른다. 그때 서머짓 몸의 대표작 '달과 6펜스' 가 생각이 났다. 즉시 책을 주문했으나 7개월이 흐른 후에야 읽었다.
과거 크게 히트했던 가요를 요즘 들으면 지금 가요에 비해 멜로디가 단순하고 사운드가 약하다. 옛날에 정말 좋았는데 왜 예전만 못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나 과거 노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흘러나오는 걸 들으면 들을 만 하다. 왜일까? 그 시대의 가요는 그 시대의 기기(라디오)로 들어야 하나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도 얼마 전 읽었다. 그 당시 젊은이들에게 선풍적인 공감을 얻어 베르테르의 복장과 자살을 유행케 했던 소설이다. 지금 보면 민밋한 사랑 얘기다. 베르테르의 쥐어짜는 듯한 심정을 공감할 수 없다. 그보다 더한 찢어지는 듯한 러브스토리를 너무 많이 본 탓일까? 왜 그것이 문학사적으로 깊은 의미를 갖는지 실감이 나질 않는다.
그렇듯 '달과 6펜스'를 읽으며 몇 장을 제외한다면 시종일관 무덤덤했다. 그 보다 자극적인 이야기가 다양한 매체(영화, TV, 신문, 책)들로 사방에 넘쳐나고 있기 때문 아닐까?
그래도 몇 구절은 인간 심리의 정곡을 찌른다.
- 고통을 겪으면 인품이 고결해진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행복이 사람을 고결하게 만드는 수는 있으나 고통은 대체로 사람을 좀스럽게 만들고 앙심을 품게 만들 뿐이다.
- 난 나보다 그 사람을 더 사랑하네. 내가 보기엔, 사랑에 자존심이 개입하면 그건 상대방보다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기 때문이야.
- 나도 관능을 알지. 그건 정상적이고 건강해요. 하지만 사랑은 병이야. 내게 여자들이란 쾌락을 충족시키는 수단에 지나지 않아. 나는 여자들이 인생의 내조자니, 동반자니, 반려자니 하는 식으로 우기는 것을 보면 참을 수가 없소.
- 사람이란 사교적인 교제를 통해서는 세상에 내보이고 싶은 외양만을 보여준다. 따라서 사람을 진짜로 알기 위해서는 자기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소한 행동이라든가,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스치는 순간적인 표정을 통해 추론하는 수밖에 없다.
- 그는 자기가 느낀 어떤 것을 전달하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었고, 오직 그것을 전달해야겠다는 생각만을 가지고 그림을 그려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이 찾는 미지의 그것에 좀 더 가까이 가기 위해 망설임 없이 대상을 단순화하고 뒤틀었다. 사실이란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자기와는 관계없는 무수한 사실들 사이에서 그는 자신에게 의미 있는 것만을 찾았다. 우주의 혼을 발견하고 그것을 표현해 내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 이래서 소설은 비현실적이 된다. 남자에게 사랑이란 일상적인 여러 일의 한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는데도 소설에서 그것을 강조하다 보니 실제와는 다른 중요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작품 해설) *인용
제목 '달과 6펜스' 는 서로 다른 두가지 세계를 가르킨다. 둘 다 둥글고 은빛으로 빛난다. 하지만 둘의 성질은 전혀 다르다. 달빛은 영혼을 설레게 하며 삶의 비밀에 이르는 신비로운 통로로 사람을 유혹한다. 마음속 깊은 곳의 어두운 욕망을 건드려 건잡을 수 없는 충동에 빠지게도 한다. 그래서 <달>은 흔히 상상의 세계나 광적인 열정을 상징해 왔다. <6펜스>란 영국에서 가장 낮은 단위로 유통되었던 은화의 값이다. 이 은화의 빛은 둔중하며 감촉은 차갑고 단단하다. 그 가치는 하찮다. 달이 영혼과 관능의 세계, 그리고 천박한 세속적 가치를 가르키면서, 동시에 사람을 문명과 인습에 묶어두는 견고한 타성적 욕망을 암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