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사형수, 수녀, 부잣집 딸로 교수지만 3번 자살을 기도 했던 나.
혹자는 신파조의 얘기 같다느니 냉소를 짓는다. 극단적인 주인공들과 구도로 인해 뭔가 통상적인 스토리가 그려질 듯 하다. 사실 그랬다.
소설은 불우한 사형수와 불안하고 냉소적인 젊은 여자가 만나 어긋나버린 자신들의 삶을 처음으로 들여다보고 힘겹게 서로의 상처를 치유해가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세상의 빛으로부터 차단된 그늘진 곳을 찾아 다니며 그들과 함께 울고 함께 아파하는 충만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들 모두를 포함한 우리 자신에게 진정한 생명과 삶의 이유를 묻고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니 말이다.
살인자 사형수는 살아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 속에서 인간으로 죽어가지만 살인자에게 죽음을 당한 사람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죽었기 때문에 더 엮어질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인상적인 귀절들
"위선을 행하다는 것은 적어도 선한 게 뭔지 감은 잡고 있는 거야. 깊은 내면에서 그들은 자기들이 보여지는 것만큼 훌륭하지 못하다는 걸 알아. 의식하든 안하든 말이야. 그래서 고모는 그런 사람들 안 싫어해. 죽는 날까지 자기 자신 이외에 아무에게도 자기가 위선자라는 걸 들키지 않으면 그건 성공한 인생이라고도 생각해.
고모가 정말 싫어하는 사람은 위악을 떠는 사람들이야. 그들은 남에게 악한 짓을 하면서 실은 자기네들이 어느 정도는 선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위악을 떠는 그 순간에도 남들이 실은 자기들의 속마음이 착하다는 것을 알아주기를 바래. 그 사람들은 실은 위선자들보다 더 교만하고 더 가엷어…
그리고 고모가 그것보다 더 싫어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 아무 기준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야.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남들은 남들이고 나는 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물론 그럴 때도 많지만 한가지만은 안돼. 사람의 생명은 소중한 거라는 걸, 그걸 놓치면 우리 모두 함께 죽어. 그리고 그게 뭐라도 죽음은 좋지 않은 거야… 살고자 하는 건 모든 생명체의 유전자에 새겨진 어쩔 수 없는 본능과 같은 건데, 죽고 싶다는 말은, 거꾸로 이야기하면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거고,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은 다시 거꾸로 뒤집으면 잘 살고 싶다는 거고… 그러니까 우리는 죽고 싶다는 말 대신 잘 살고 싶다고 말해야 돼. 죽음에 대해 말하지 말아야 하는 건, 생명이라는 말의 뜻이 살아 있으라는 명령이기 때문이야…"
"아는 건 아무것도 아닌 거야. 아는 거는 그런 의미에서 모르는 것보다 더 나빠. 중용한 건 깨닫는 거야. 아는 것과 깨닫는 거에 차이가 있다면 깨닫기 위해서는 아픔이 필요하다는 거야."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2005) 공지영 / 푸른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