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EL/읽기

르 크레지오 / 황금 물고기

felixwoo 2009. 9. 28. 20:19

주인공은 유괴 당한다. 그렇게 그녀의 삶은 시작되었다. 달아나듯 떠난 길은 쫓긴다는 불안과 언제나 함께 한다. 쫓기듯 정주하지 못하고 세계 도처를 표류하는 그녀에게 인연도 많고 위협과 위험도 많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떠밀려 떠나기도 스스로 떠나기도 한다.

 

끊임없이 세상을 표류하며 자신에게 묻는다. “왜 언젠가는 달아나지 않을 수 없는가?”  밑바닥 삶은 잘 사는 나라이든 못 사는 나라이든 세계 어디이든 별반 다른게 없다. 부랑아들은 기회만 있으면 동물적 본능인 성에 탐익하려 덤빈다. 어떤 자는 성기를 빼어들어 보이기도 하고 어떤 자는 강간하려 덤비고 어떤 자는 음식으로 유혹한다. 사람들은  부랑아들이 공중도덕도 지키지 않고 사회를 어지럽히고 더럽힌다고 생각한다. 하나 그들에겐 국가, 사회같은 의미있는 삶보다 현재의 즐거움이 더욱 중요하다. 우리 주위에도 교통질서를 무시하며 마구 달리는 각종 배달 오토바이들을 많이 본다. 그들은 한술 더 떠 이상한 크랏숀 소리와 소음기를 달지 않은 엔진 소음을 마구 내품는다. 창을 열어 놓는 여름철엔 그들이 내는 소음 공해에 분노마저 느낀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차가운 시선을 주지만 그들에겐 자기의 존재감 확인과 즐거움을 느끼는 행동만이 현재의 분노와 산다는 무료함을 달래는 유일한 길이라서 그렇지 아닐까 추측해본다.

 

쫓긴다는 강박에서 자유가 되는 날 그녀는 자신이 유괴되었던 그곳에 서 있다. 마침내 그녀는 여행의 끝에 다다랐음을 안다. '바닷가에 손을 담그면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 어느 강의 물을 만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듯 사막 먼지에 손을 올려놓으면, 나는 내가 태어난 땅을 만진다. 내 어머니의 손을 만진다.' 어머니와의 화해, 유괴와의 화해, 세상과의 화해인 것이다. 자기의 태생, 자기 상황에 순응하며 그냥 사는 삶에서 벗어나 자각하게 된다. 그녀는 자유로우며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음을 느낀다.

 

아내는 황석영의 '바리떼기'와 비슷하다 했다. 그 말을 들으니 그렇게 생각되었다.

 

(yes24 줄거리 인용)

 

“예닐곱 살 무렵에 나는 유괴당했다.” 소설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이라는 뜻의 라일라라는 이름의 이 소녀에게 남은 어린 시절의 기억, 그러니까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서 왔는지 밝혀주는 유일한 기억은 햇살이 내리쪼이는 눈부시게 하얀 거리, 비명처럼 고통스레 내지르는 까마귀 울음소리, 그리고 어린 그녀를 잡아 검은 자루 속에 집어넣는 커다란 손뿐이다. 그녀는 랄라 아스마라는 노파의 집으로 팔려가 그 집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지만, 그녀에게는 세상 전부인 그곳에서의 삶도 언제나 그녀의 여린 육체를 탐하는 노파의 아들이 있고 그녀를 학대하는 며느리가 있기에 그리 녹록치 않다. 노파가 죽고 나자 오갈 데 없어진 라일라는 우연히 알게 된 거리의 여자들이 살고 있는 수상한 여인숙에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서 그녀는 그 아름다운공주님(라일라는 창녀들을 그렇게 부른다) 과 살면서 세상에 눈떠간다. 숱한 역경과 고난을 거쳐 프랑스로 밀입국한 라일라의 삶에, 그때부터 자기를 찾기 위한 기나긴 항해가 시작된다. 그녀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왜 언젠가는 달아나지 않을 수 없는가?”

 

급류를 거슬러올라가는 물고기처럼 언제나 다른 사람, 다른 사물들 사이를 누비며 살아가고 싶어하는 그녀. 그러나 그녀는 발 딛는 곳 어디에서도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이방인임을 절감하며 끊임없이 표류한다. 프랑스를 전전하다 미국으로 그곳에서 다시 프랑스로, 그리고 아프리카로. 마침내 아프리카의 모래 먼지 자욱한 땅, 그녀의 조상이 수천 년 전부터 간단없는 삶을 살아왔던 그 땅에 발디딘 순간, 그녀는 본디 자기가 서 있어야 할 곳, 나고 자란 그곳에 돌아와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이제까지의 기나긴 표류가 결국 이곳으로 돌아오기 위한 오랜 항해였음을 깨닫게 된다. 세상이라는 탁류에 휘말린 물고기이지만 그녀에게는 원래부터 황금 비늘이 달려 있었고, 아프리카 모래 사막 위에서 그녀는 드디어 그 황금 비늘을 번뜩이는 황금 물고기로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이다.

 

이제 그녀의 기억은 그녀가 유괴되었던 15년 전을 뛰어넘어 영겁의 시간 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이 말라붙은 소금처럼 새하얀 거리, 부동의 벽들, 까마귀 울음소리 가득한 사막에서 그녀는 자신의 흑진주처럼 까만 속살 아래 메아리 치는 심장 박동 같은 북소리, 그녀 부족의 노랫소리를 듣는다. 유럽인들이 짐승 굴이나 진배없는 지하동굴 속에서 근근히 살아가고 있을 무렵에 이미 문명화된 삶을 누렸던 이들이 부르는 시원(始原)의 노래, 우리 시대의 랭보 르 클레지오가 들려주는 것은 바로 이 생생한 태고의 노랫소리이다.

 

 

황금물고기 (1997)       르 크레지오 지음  최수철 옮김 /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