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EL/국내 여행

(화천) 파로호 + 평화의댐

felixwoo 2008. 11. 7. 17:44

화천에서 12일 회사 임직원 단합대회를 가졌다도착한 날 부서 연합팀별 운동 경기를 마치고 바베큐 파티를 하였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화천시에서 마련해준 화천시 소속 유람선을 임직원들이 타고 파로호를 출발하였다.

 

11월초 파로호의 아침은 두터운 옷을 입었음에도 한기를 느낄만큼 추웠다. 공기는 냉냉하고 싸늘했다. 호수위로 물안개가 자욱하게 퍼져있다. 여명으로 호수는 검게 빛을 반사하고 있다배는 잔잔한 호수 위를 미끄러지듯 거슬러 올라간다. 흩어졌다 모이고 모였다 흩어지는 호수 위를 유유자적 적막하게 간다어둠과 안개가 서서히 걷히면서 호수를 가둬놓은 뭍들이 하나 둘 나타나다. 화사한 여우 목도리처럼 포근한 숲들로 입혀져 있다. 가을은 절정을 지나 막바지 단풍이 숲을 화사하게 수 놓고 있다.  

 

파로호 전투는 1951 5월 용문산 지구 전투에서 크게 패한 중공군이 북한강 이북으로 철수하는 과정에서 벌어졌다. 강과 골짜기로 대거 몰린 중공군을 국군과 유엔군이 거세게 몰아붙였다. 이 과정에서 소대 병력이 중공군 대대 병력을 생포하는 진풍경이 벌어졌고, 5 28일에는 하루 동안 38000여 명의 중공군 포로를 잡기도 하였다. 파로호 전투에서 중공군 62000명이 사살 혹은 포로로 잡혀 파로호 일대는 피로 물들었다. 당시 화천 저수지로 불리던 이 호수를 이승만 대통령은 오랑캐를 무찌른 곳이라 하여 ‘파로호(破虜湖)’라 이름 지었다 한다.

 

한 시간여의 항해 끝에 평화의 댐 선착장에 도착했다평화의 댐은 북한 수공의 공포에 떨면서 국민 성금으로 건설되었다. 정권이 바뀌고 정치적으로 이용되었다는 역공을 받았다. 그 후 같은 수계에 있는 북한 댐 균열로 수공에 버금가는 사고가 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사고에 대비하여 댐 높이를 높이는 보강 공사를 했다. 거짓 공방이 또 다른 사실로 인정되는 우여곡절이 많은 댐이다.  사고에 대비하여 비어 논 탓인지 저수량은 그리 많지 않았다.

   

 

 파로호

  

 유람선 뱃머리

 

유람선 조정실  

 

 

 

 선착장 과 화천시 유람선

 

 평화의 댐

 

 댐 본체 안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