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EL/읽기

한비야 /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felixwoo 2010. 4. 9. 16:57

요즘 젊은이들이 만나보고 싶은 사람 1위가 한비야씨라 한다. 그녀에 대해서는 나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머물지 않고 항상 새로운 도전을 하는 사람. 늦은 대학진학, 괜찮은 직장을 관두고 세계여행, 중국유학, 월드비전의 긴급구호팀장 그리곤 지금은 미국유학 중이란다. 이전에중국견문록이란 그녀의 책을 본 적이 있다. 그렇게 잘난 것 없으면서 건전한 대중적인 인기를 모으니 부럽다.

 

월드비전은 나와도 작은 인연이 있다. 기술사를 준비하던 때 차를 운전하다 정지신호 받고 서 있었다. 옆에 버스도 섰다. 이상한 기척에 버스 안을 보니 운전사가 운전석을 떠나 아이들을 욱박 지르고 있었다. 정신 장애우 교육기관 통근버스였다. 그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공평하지 않게 태었난 것도 억울한데 서비스를 받아야 할 운전사에게 욱박을 당하다니신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원망하며 신과 협상했다. 기술사 시험에 합격시켜주면 회사에 나오는 수당의 반을 기부하겠다. 결국 합격했고 반에 약간 못 미치는 돈을 기부했다. 그 기부기관이 선명회였다. 선명회는 월드비전의 예전 이름이다. 불자를 자처하는 내가 굳이 기독교 성격을 띤 기관을 선택한 것은 기부금의 사용 투명성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그게 1993년이다.

 

이 책은 저자가 월드비전의 긴급구호팀장을 맡으며 경험한 얘기들이다. 아프가니스탄, 말라위, 잠비아, 이라크, 시에라리온, 라이베리아, 네팔,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남아시아 해일대참사, 북한.

 

아프가니스탄. 문제는 전쟁이 아니라 혹독한 굶주림이었다. 산간지방이라 농사가 잘된 해에도 필요한 식량의 6개월 치밖에 확보하지 못하는 데다가 극심한 가뭄이 들어 4년째 아무런 수확이 없단다. … 마을로 들어가니 다섯살 정도의 여자아이가 땅에서 뭔가를 찾아 겨우 흙만 털고는 게걸스럽게 입에 넣는다. 그러다 나를 보더니 얼른 손을 뒤로 감추며 수줍게 웃는다. 입 주위에는 시퍼런 풀물이 들어있다. 먹고 있는 것은 시금치처럼 생긴 야생풀. 신장과 위장에 치명적이고 눈까지 멀게 하는 독초란다. … 냄비 안에는 이름 모를 풀이 반쯤 담겨 있었다. 그게 지난 몇 달간 이 여섯 식구의 주식이란다. …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아이를 본다. 네가 무슨 잘못을 했냐고? 세상을 채 2년도 살지 않은 너에게 도대체 무슨 잘못이나 죄가 있겠니. 아니. 생각해보니 죄가 있구나. 가난한 나라에서 가난한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난 죄. 그게 바로 죽을 죄였구나.

 

이 글을 읽으며 안타까움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인간세상은 최소한 인간답게 살도록 꾸며져야 한다. 그런 기본권 위에서 사치, 낭비, 과식, 과음, 축제, 호사 등이 있어야 한다. 인간세상의 문제점은 부족이 아니라 분배의 문제임에 동의한다. 현실적으로 세상을 리드한다는 사람들이 모여 인류의 기본권 확보에 관한 로드맵을 우선 수립해야 한다. 정치, 이해관계, 인종, 토지문제를 넘어 대승적인 합의를 이끌어야 한다.

 

다음날 신과 당초 약속했던 금액으로 올려 기부했다. 17년 만이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2005) 한비야 / 푸른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