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EL/읽기

김훈 / 공무도하

felixwoo 2010. 8. 31. 15:26

김훈이 연애 소설을 쓴다면 어떨까? 그 사랑 행위도 비장하고 군더더기가 없을까?

 

소설 공무도하는 영화로 치면 느와르 풍의 소설이다. 반영웅적인 주인공,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와 스토리 전개. 비록 범죄소설은 아니지만, 비루하고, 치사하고, 던적스런 인간의 당면 문제를 모자이크식으로 꿰어간다. 중세초기 유럽의 대부분 사람들은 '더럽고, 짐승 같고, 궁핍한' 삶을 살았다고 홉스는 얘기했다. 지금은 그 때보다 깨끗하고, 잘 살지만 짐승 같은 데서는 벗어났을까?  인간답게 산다는 게 뭘까? 짐승같이 사는 게 자연스러운 것일까?

 

세상을 긍정적이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혹자의 행복개혁에 동의하지만, 어두운 곳을 보면 마음이 여전히 어두워진다. 붉은 공이 나타나면 붉은 공을 비추고, 검은 공이 나타나면 검은 공을 비추는 평정심의 경지인가? 그 경지에 이르지 못한 것은 내가 안다. 

 

(yes24 출판사 서평)

 

사랑아, 강을 건너지 마라

님아 강을 건너지 말랬어도

기어이 건너려다 빠져 죽으니

어찌하랴 님을 어찌하랴   (여옥의 노래)

 

멀고 아득한 것들을 불러서 눈앞으로 끌어오는 목관악기 같은 언어를 나는 소망하였다. 써야 할 것과 쓸 수 있는 것 사이에서 나는 오랫동안 겉돌고 헤매었다. 그 격절과 차단을 나는 쉽사리 건너갈 수 없었다. 이제, 말로써 호명하거나 소환할 수 있는 것들은 많지 않을 터이고, 나의 가용어(可用語) 사전은 날마다 얇아져간다.

 

 

제목으로 정한 공무도하(公無渡河)는 옛 고조선 나루터에서 벌어진 익사사건이다. 봉두난발의 백수광부는 걸어서 강을 건너려다 물에 빠져 죽었고 나루터 사공의 아내 여옥(麗玉)이 그 미치광이의 죽음을 울면서 노래했다.

이제 옛 노래의 선율은 들리지 않고 울음만이 전해오는데, 백수광부는 강을 건너서 어디로 가려던 것이었을까.

백수광부의 사체는 하류로 떠내려갔고, 그의 혼백은 기어이 강을 건너갔을 테지만, 나의 글은 강의 저편으로 건너가지 못하고 강의 이쪽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배운 그 옛 노래는 오랫동안 내 마음속에 그 사내의 뒷모습을 떠오르게 했는데, 들리지 않는 옛 노래의 선율이 나의 연필을 이끌어주기 바란다. (‘연재를 시작하며’)

 

5 1일 첫 일일연재를 시작하며 작가는 그렇게 말했었다. 그는 또한,

 

“약육강식은 모든 먹이의 기본 질서이고 거대한 비극이고 운명이다. 약육강식의 운명이 있고, 거기에 저항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이 있다. ‘공무도하가는 강 건너 피안의 세계로 가자는 것이 아니라 약육강식의 더러운 세상에서 함께 살자는 노래이다. 나는 인간 삶의 먹이와 슬픔, 더러움, 비열함, 희망을 쓸 것이라 밝혔었다 

 

“말로써 호명하거나 소환할 수 있는 것들은 많지 않을 터이고, 그의가용어 사전은 날마다 얇아져 간다고 했지만, 그의 책상 위에 쌓인 지우갯 가루는 매일같이 높아져갔고, 그렇게 5개월, “멀고 아득한 것들을 눈앞으로 불러왔던긴 노래는 끝이 났다.

 

인간은 비루하고, 인간은 치사하고, 인간은 던적스럽다. 이것이 인간의 당면문제다.

 

문정수

한국매일신문 사회부 기자. 기르던 개에게 물려 죽은 소년의 어머니를 찾기 위해 십 년 전 군인으로 복무했던 해망을 찾은 것을 시작으로 해망 방조제에서 벌어진 교통사고, 해망 방조제 도로 개통, 해망 해저 고철 인양사업 등을 계속 취재하며 해망과의 질긴 인연을 이어간다.

 

노목희

지방대학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창야중학교의 미술교사로 있다가 가끔 만나던 선배인 장철수가 창야에서 사라진 다음해 고향을 떠나 서울로 와서 출판사에 근무한다. 가끔 문정수가 야근을 마친 새벽에 찾아와 혼자 중얼거리듯 늘어놓는 세상의 이야기들을 들어준다.

 

장철수

창야에서 농과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한 후에도 노학연대 근처를 서성대다, 경찰서에 연행되어 노학연대 집행부 일급 수배자들의 은신처를 자백하고 풀려난 뒤 해망으로 떠난다. 후에와 함께 물밑 펄에 널려 있는, 미군 폭격기와 전투기 들이 쏟아낸 포탄 껍질과 탄두를 건져 올려 팔며 살아간다.

 

박옥출

서울 서남소방서 인명구조특공조장 소방위. 캐피털백화점 화재현장에서 귀금속 매장의 보석과 금붙이 들을 빼돌리고 육 개월 후 신장병을 이유로 소방서에서 퇴직한다. 그 후 해망으로 가서 해저 고철 인양사업을 추진하는 업체의 전무이사가 된다.

 

오금자

남편과 이혼한 후 치매 초기증세를 보이는 어머니에게 어린 아들을 맡기고 혼자 고향으로 내려가 식당에서 일하다, 텔레비전 뉴스로 아들의 죽음을 알게 된다. 그 후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지내다 방천석을 만나, 그의 가옥과 농경지의 관리를 맡기로 하고 장철수, 후에와 함께 해망 방천석의 집에서 지낸다.

 

후에

베트남의 산간농촌에서 태어나 물밑에서 해초를 건져 팔아서 생계를 이어가다, 결혼중개회사를 통해 최인수와 결혼하여 한국으로 온다. 하지만 최인수가 별거중인 전처가 낳은 아들 둘의 양육과 갯벌일, 밭일을 요구하자 가출하여 장철수와 함께 물밑 고철을 건져 올리며 살아간다.

 

이들이 모여들어 또 다른 사건들을 만나게 되는 조그만 바닷가 마을인해망, 어쩌면 서울 변두리 어느 동네의 이름일 수도, 강원도의 어느 산속마을의 이름일 수도 있다. 그 여러해망에는 또 다른 문정수와 박옥출과 장철수와 노목희와 오금자와 후에가 강 건너 저편으로 가지 못하고 약육강식의 더러운 세상에서함께살고 있을 것이다. 950매의 짧지 않은 이 노래는, 결국 인간 삶의 먹이와 슬픔, 더러움, 비열함,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살아가는 이들의희망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공무도하    김훈 저 / 문학동네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