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EL/해외 여행

(폴란드) 바르샤바 그리고 크라카우

felixwoo 2010. 9. 4. 17:24

 

l  폴란드.  '평평한 땅'이란 뜻이란다. 한반도 면적보다 1.5배이고 지형이 평지가 70%, 산지가 30% 정도 된다니 우리완 반대다. 끝없는 외침의 역사로 점철되었다. 최근 2차 세계대전시 독일에 항전 함으로서 수도 바르샤바의 80% 이상이 파괴되었다. 옆 나라 체코는 일찍 항복한 턱에 프라하를 온전하게 보전할 수 있었다. 비교되는 대목이다. 다른 나라에 비해 호텔 및 식당 종업원들의 무뚝뚝함도 여기에 기인하는지 모르겠다.

 

l  와지앵키 공원. 쇼팽이 타지에서 죽을 때 폴란드에서 가져온 흙을 뿌려달라 했다는 유언은 애국심 고취를 위해 교과서에 실렸던 얘기다. 공원 내 장미정원에 쇼팽의 동상이 있다. 매주 이곳에서 쇼팽 곡이 연주되는데 주위 시민들이 모여들어 편안하게 감상한단다. 드넓은 대지에 커다란 나무들로 울창한 숲이 펼쳐져 있다. 시민들이 산책이나 운동을 즐긴다 한다. 

 

  쇼팽 동상

 

l  바르샤바 구시가지. 2차 세계대전 때 90% 이상이 완파된 시가지를 파괴 전 사진을 보며 복원했다고 한다. 일부 건물 외벽에는 조각들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는데 복원자금이 충분치 않아 조각대신 그려 넣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구시가지의 중심은 네모난 광장이다. 주위를 4-5층 건물들이 빽빽하게 둘러싸고 있다광장이 있으면 그곳에 구성요소로 시청, 성당(교회)이 반드시 있는 것이 중세도시의 특징이다.


   바르샤바 구도심 입구 

바르샤바 구도심 광장

 

l  크라카우. 폴란드의 구 수도로 중세 풍의 면모를 많이 간직한 도시다도심 광장은 유럽에서 2번째로 넓다 한다. 날은 어둑어둑해지는데 부슬비가 온다. 성모 마리아 교회와 직물회관을 둘러봤다. 성모 마리아 교회는 첨탑이 특이하게 비대칭인데 이는 형제가 하나씩 맡아 최고의 아름다움과 높이를 경쟁한 결과라 한다. 첨탑까지 올라갈 수 있다 한다시가지 남쪽으로 역대 폴란드 왕이 거처했던 웅대한 바벨성이 보인다. 

 

  크라캬우 광장 성모 마리아 교회 

직물회관 상점

 

l  비엘리츠카 소금광산. 유네스코 지정 자연유산이다. 먼 옛날 바다가 융기되어져 소금이 암염상태로 묻혀져 있는 곳이다. 바위 속에 소금이 투명한 석영처럼 보인다. 총 갱도 길이가 300 Km라니 어마어마 하다. 입구에는 'God bless you' 라 써있다갱도 작업은 항상 위험과 죽음이 도사리고 있었다. 노동자들은 서로 간의 인사로서 'God bless you' 를 주고 받았단다지금도 쓰이고 있는 말이다. 중세에도 소금이 귀하고 비싸 소금이 나는 곳은 부가 넘쳐나는 곳이 되었다. 소금을 캐는 사람들에게 급여로 소금이 지급되었는데 Salary man의 어원이 Salt man 에서 나왔다 한다. 광산 내부에는 채굴된 소금을 수직으로 나르는 수차들이 있었는데 말 수필이 연자방아 같이 돌린다. 갱도는 사람이 겨우 다닐만한 좁고 가파르고 낮은 공간이다. 말을 들여 올 수 없어 망아지 때 들여와 키웠다고 한다. 하지만 빛을 보지 못하고 자란 말들은 눈이 멀게 된다는 슬픈 얘기를 들었다. 동굴 내부 사진을 찍었으나 어두워 잘 나온 게 없다인터넷에서 하나 퍼왔다.

 

 소금광산 내 교회 

 

l  아우슈비츠 수용소. 폴란드 지명으로는오시비엥침. 독일인들이 발음이 어렵다고아우슈비츠로 불렸단다. 처음 만든 배경은 저항하는 폴란드 정치범들을 수용하기 위해 만들었다.

 

u  히틀러는 독일이 1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으로 지게 된 막대한 배상금 모면하고 자신의 정치 기반이기도 한 100만 실업자를 구제할 목적으로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그가 내건 정치구호는 아리안계 중심의 인종주의민족주의 였다. 인종주의의 타켓은 비단 유태인 만이 아니고 짚시, 동성애자 등도 대상이었다전쟁이 확대되면서 군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자국 내 경제권을 쥐고 있는 유태인들을 억압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거주지 내 유태인 주거지역을 지정하고 이주시킨다. 이것이 변형되어져 타 지방으로 이주시키며 소지품을 12 KG로 제한한다. 타지방은 아우슈비츠였다. 소지품은 보관한다고 빼앗아 군자금으로 화했고, 노동력이 없는 아이, 노인들은 즉시 죽음을 맞았다. 노동력이 있는 사람들은 모진 학대 속에서 사역에 시달려야 했다. 


u  이곳에서 희생된 유대인은 독일 내 거주민만이 아니고 주변 모든 나라에서 소개된 유태인들이었다. 이는 주변국들도 유태인 소개에 거들었다는 사실이다. 히틀러가 가진 생각을 동시대 유럽인들도 방관했다는 사실이다중세 이전부터 유대인은 대금업이 종교적으로 자유로워 자연스럽게 금융업에 종사하였고 결국 지역 금융시장을 장악하게 된다. 11세기에도 성벽으로 둘러싸인 '게토'라는 자신만의 집단 거주지를, 특이한 복장과 예식으로 지역 사회와 융화하지 않았다. 결국 유대인은 모든 지역사회로부터 불만과 원성을 듣게 된다. 


u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 히틀러의 광기가 어울려져 끔직한 학살이 자행된 것이다. 주범은 히틀러이고 공범은 주변국가들이다. 어찌보면 지역사회에 반감을 사며 동화하지 못한 유대인들도 자성해야 한다. 이렇게 역사적으로 어려움을 겪은 유대인들이 지금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현지인들과 공생하지 못하고 주먹을 휘두르는 현실을 볼 때마다 반감이 든다.

 

아우슈비츠 수용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