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EL/해외 여행

(인도) 델리, 바라나시 그리고 카쥬라호

felixwoo 2008. 7. 9. 17:57

 

집 앞에 공항 리무진이 생겼다. 토요일이라 길이 많이 막힌다공항 미팅시간에 지각하고, 늦게 보딩 체크한 탓에 비행기 2-3-2인 배치 좌석 중 가운데 있는 3 중간 좌석에 한 명씩 끼어 갔다. 최악이다.

 

저녁에 도착하여 어두컴컴한 길을 달려 호텔에 당도 했다델리시 외곽에 있었지만 시설은 마음에 든다보통 세 식구에겐 투윈 룸에 임시 베드 하나를 설치해 준다. 이 호텔은 이례적으로 더블 베드가 있는 침실 두 개에 욕실이 두 개다여행할 때 숙소는 디럭스하지 않더라도 편안해야 하는데 그 이상이다. 하나 모두 다 좋을 순 없다고 방이 많다 보니 떠나 올 때 옷장 안에 입던 옷들을 두고 나왔다. 다행스럽게 여정 마지막 날 델리로 다시 왔을 때 찾았다.

 

 

 

자마 맛스지드 

 

자마 맛스지드.  모스크 돔과 높은 첨탑은 붉은 성벽과 함께 무굴 시대의 델리를 상징하는 강렬한 이미지이다샤 자한의 명령에 의해 세워졌는데 1658년에 완성되었다. 인도 최대의 모스크일 뿐만 아니라 동양서도 손꼽히는 크기이며 건축광이었던 샤 자한의 최후 걸작이기도 하다.

 

붉은 사암과 흰 대리석이 조화된 아름다움이 있고 학이 떼를 지어 날아다니는 넓은 경내는 성지 메카를 향한 이슬람교도의 예배가 거행되는 성이다. 입구는 모스크 북쪽의 넓은 돌계단 위에 있는 문이다. 지금도만여 명이 동시에 알라 신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를 하는 살아 있는 신전이다. 들어가려면 맨발을 이어야 한다. 맨발에 닺는 사암의 촉감은 따뜻하고 부드럽다.    

 

간디 묘

 

간디 화장터에서 고유 의상을 입은 현지인

 

간디 화장터라 했지만 화장터가 아니라 묘소다. 넓게 터를 잡은 공원 중앙에 간디의 묘소가 납작한 사각형 대리석으로 소박하게 자리잡고 있다. 묻힌 때부터 타오르고 있다는 영혼의 불꽃이 오늘도 타오르고 있었다.

 

묘소 앞에 세 사람이 북을 치며 앉아 뭔가를 부르고 있다. 그들의 부채에 새겨진 걸 보니 '일본산묘법사' 라 써 있다일본 불교 종파라 한다. 인도는 사람만큼 신도 많고 종교도 많다더니 외세 종교에 대한 거부감도 없나 보다... 이런 블랙홀 감성이 미래에 잠재력으로 나타날 지도 모르겠다.    

 

시크교 사원

 

시크교 사원.  '힌두도 없고 이슬람도 없다', 해탈은 생사의 윤회에서 벗어나 신과 영원히 합일하는 것. 살아있는 사원이다. 남자 시크교도는 터번을 쓴다. 사원에 들어가려면 머리칼을 가리고 맨발 이어야 한다. 나갈 때 신도들이 신에게 바쳐졌던 음식을 조금씩 나눠준다. 나눔의 종교라 한다.

 

바하이 사원

 

바하이 사원. 중동 지역의 국가인 바하이 에서 19 세기에 만들어진 신앙운동으로서 말 그대로 어떠한 종교적인 명분보다는 인간이 지닌 원초적인 감성과 이성에 더 주안점을 두고 포교하는 종교 단체로서, 종교의 나라 인도에 들어온 후에 조용하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신흥 종교이다.

 

델리에 아름답게 자리잡고 있는 연꽃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사원은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연꽃 모양한 건물은 널직하게 자리잡고 있는데,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도 이 모양을 기초로 만들어 졌다고 한다. 갑자기 비가 내려 원근에서만 봤다.

 

 

 

쿠툽탑 

 

회랑

 

쿠툽 유적지. 델리에서 남쪽으로 약 15 km 지점의 넓은 평원에 높이 73 m, 기저부의 지름이 14.5 m의 독특한 탑이 있고층 중 아래층은 적사암이며 그 위는 대리석과 사암으로 지어져 있고, 코란의 문구를 도안한 조각이 외벽에 새겨져 있다. 원래는 노예왕조의 술탄인 굽타우딘 아이바크가 힌두교도에 대한 승리를 기념하여 1199 년에 건축한 것으로 후에 그의 사위가 완성하였다.

 

각 층 사이에 발코니가 있고, 내부는 나선형의 379 계단으로 되어있다. 부지 안에는 인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슬람 문으로 알라이 디와자가 있다. 이 문은 회교, 힌두교, 자인교가 하나의 합일을 이루고 있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세월이 많이 흘렀어도 정교한 조각과 문양들은 사람들을 매혹시키고 있다.

 

사원의 마당에 굽타 왕조의 것으로 추정이 되는 쇠기둥이 서 있다. 높이는 7.2 M이며 순도 100 %를 자랑하면서 아직까지도 녹 하나 슬지 않고 있다. 당대에 어떻게 순도 100 %의 쇠기둥을 만들 수 있었는지 지금도 확연히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단선이라 교행을 위해 선 열차 

 

1층 침대 

 

바라나시 역 

 

바라나시 행 침대열차. 외국 영화에서 등장하는 방 형태의 침대 열차를 상상했는데 여지없이 부서졌다. 낡을 대로 낡은 객차 안에는 3 층 침대가 마주 보고 도열해 있고 통로 건너 다른 창측에는 2 층으로 침대가 붙어 있다. 흡사 노예를 실어 나르던 같은 분위기다. 1,3 층 침대는 고정 되어 있으나 2 층 침대는 벽에 붙어서 등받이 구실을 하다 천장에 부착된 쇠사슬 고리를 연결하면 침대가 된다.

 

탑승하면 세 사람이 1 층 침대에 나란히 앉아 맞은 편 침대 세 사람과 마주보고 앉아 있는다. 가면서 제각기 식사를 하고 밤이 깊어지고 한 사람이 눕기 원하면 그 때 벽에 붙어 있던 2층 침대를 펴 각자 침대로 올라간다.

 

기차내 음식이 시원치 않다 하여 가이드가 준비한 저녁이 제공되었다. 도시락 밥에 반찬으로 김치, 절임 마늘, 찐 계란 거기에 우리가 가져간 구운 김이 더해 졌다. 한국 음식 특유의 냄새가 요란한 상황에서도 마주한 침대 칸에는 사리를 입은  할머니와 두 중년 남자들은 불편한 기색 없이 얼굴이 편안하다.

 

아내가 1, 아들이 2층 그리고 내가 3층 침대를 잡았다침대는 비좁고 내려다 보니 아찔했다. 에어컨은 시원을 넘어서 춥다. 기차 특유의 요란한 소음에도 피곤하니 잠은 잘 온다

 

새벽에 깨어보니 6시경이다. 답답하다. 객차 출입구로 갔다. 맑은 햇살이 비친다. 시골 풍경들이 펼쳐진다. 무더운 기후는 식물들에겐 천국이다푸른 밭과 논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우리 시골 마을 쉼터에서 볼 수 있는 큰 나무들이 평원 군데군데 서 있다. 사람들 살림집들은 궁색하게 보여도 자연은 풍요로워 보인다. 

 

 

사르나트

 

사르나트 (녹야원).  사르나트는 바라나시에서 12 km 떨어져 있다. 힌두교의 최대 성지 중의 하나인 바라나시와 지척이지만 바라나시의 혼잡과는 거리가 멀게 조용하고 한가한 곳이어서 사뭇 색다른 맛을 가진 곳이다. 성자가 머무는 곳이라는 뜻의 리쉬파타나 라고도 불리었던 이곳은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루신 내용을 처음으로 세상에 펼친 곳이었다.

 

부처가 태어나신 탄생지 룸비니, 깨달음을 얻은 성도지 부다가야, 세상을 떠나신 열반지 쿠시나가르 와 함께 사르나트는 법의 바퀴를 처음으로 굴린 초전 법륜지로서 불교의 4대 성지 중의 하나이다녹야원은 예전에는 사슴이 노닐었던 넓은 초지다. 후세에 아소카 왕이 부처 설법지마다 적벽돌로 된 원형 탑인 스투파를 쌓았다. 이 부근에는 불교를 숭상하는 나라들이 세운 사원들이 산재해 있다 한다. 그 중 우리나라 사원이 제일 크다 했던가?

 

  

먼지방지 마스크를 쓰고 릭샤를 타다 

거리 풍경

 

릭샤.  갠지스강으로 가기 위해 ‘릭샤’ 라 하는 자전거가 끄는 인력거로 40 여분 간다. 날씨는 무덥다. 차 길은 인도 차도 없이 사람과 모든 교통수단이 엉켜 연신 크락숀을 울려낸다. 먼지와 차량 매연이 몰려오고 정신이 하나도 없다. 들은 바 있어 마스크를 사전에 준비했으나 먼지와 매연이 그렇게 심하지 않고 이방인들이 너무 유난 떠는거 같아 슬그머니 벗었다

 

릭샤를 끄는 사람 모습이 힘겨워 안스럽다. 땀을 뻘뻘 흘리며 연신 땀을 닦는다움직이면 그나마 관성으로 가지만 섰다 갈 경우는 일어서서 페달에 온 몸의 무게를 실는다팁을 후하게 줘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난다.

 

 

갓트

 

화장터 갓트 

 

힌두교 의식이 행해지는 갓트 

 

갠지스 강의 일출 

 

물 담그기  

 

성수 용품을 파는 노인 

 

갠지스강. 저녁 무렵 갠지스 강은 해가 길다. 우기라서 강물이 불어나 계단 일부가 잠겼다. 인도 힌두인 들에게 갠지스 강은 성스런 곳이며 성수다. 이방인들이 보기엔 한강과 같이 강폭이 넓고 가운데 유속이 빠른 누런 흙탕물이었다. 갓트(GHAT)란 육지에서 강으로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설치 되어 있는 계단 길이다. 남북으로 흐르는 갠지스 강에 몸을 담그는 것은 힌두교인들에겐 절대로 빠트릴 수 없는 의식이다. 백여 개를 헤아린다는 갓트들이 바라나시 시가지와 연결되는 강의 서편에 설치되어 있다.


갓트의 대부분은 18세기에 이루어진 것인데, 그 중에는 유력 지역의 부유했던 힌두 왕조의 맥을 이은 마하라자들이 각자의 저택을 조성하며 만든 갓트들도 있다. 이들이 만든 갓트는 중세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그들이 궁전과 같이 공존하고 있다. 지금의 갓트는 힌두의식이 치루어 지는 곳, 화장터, 나룻터 등 다양하게 사용된다. 하지만 성스런 강물에 몸을 담그는 모습은 어디서나 볼 수 있다.

 

보트를 타고 하류 쪽으로 조금 가니 화장터 갓트가 있다. 몇 군데서 장작 불이 타오르고 있다. 시신을 태우고 있단다. 힌두인들에겐 여기서 화장되는 게 소원이란다. 계단에는 죽엄 두 구가 있다. 화장하기 전 갠지스 강 물을 적시는 의식을 행한다 한다. 접근 촬영은 안 된다 한다. 망자에 대한 예의 일까?

 

 

 

 

상류로 올라가며 꽃종이로 장식된 초에 소원을 붙여 강에 띄운다. 뭔가를 기원했지만 생각 나지 않는다. 힌두의식을 행하는 갓트가 나타났다. 어느새 어두워진 갓트에는 조명이 환하게 밝혀져 있고 많은 사람들이 계단에 앉아 있다. 강에는 이를 보기 위한 배들이 그득하게 정박한다. 인도의 노래는 리듬이 강하다. 회교의식 음악도 그렇고 TV속의 음악도 그렇다. 비트 있는 음악을 바탕으로 브라만이 주도하는 의식이 행해진다. 주위는 적막과 어둠이 깃드는데 호박 빛으로 밝혀진 갓트는 공연장의 무대를 방불케 한다. 이동하며 보니 옆 갓트에서도 이와 비슷한 의식이 행해지고 있었다.

 

 캬쥬라호 서군 힌두사원  

 

힌두사원 조각 일부

 

인도 아이들

 

카쥬라호. 무사 출신의 왕조답게 찬델라 왕조는 한때 인도 내륙의 중반부에 걸쳐서 폭넓은 영역을 확보하였는데, 이처럼 500 여 년을 이어가던 찬델라 왕조는 회교세력에 의해서 끝을 맺게 되었다. 그러나 이 왕조는 그들이 한 때의 수도지로 삼았던 이곳 카쥬라호에 950 년부터 1050 년까지의 불과 100 년 사이에 무려 85 개의 사원을 조성해 놓은 것이다. 지금은 비록 22 개밖에 남지 않았지 만은, 무엇 때문에 그들이 이처럼 동 떨어진 위치의 장소를 수도지로 삼아 '황금시절의 장소'라는 뜻의 이름을 붙이고, 이 많은 사원을 짓게 했는지는 아직껏 시원하게 밝혀진 바 없다.

 

뿐만 아니라 20 KM 가량 떨어진 켄 강에서 캐낸 사암들을 운반하고 깍아 세우는 그 엄청난 작업에 사람들을 어떻게 조달하고 관리했는지는 아직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카쥬라호가 이처럼 외진 곳에 자리잡은 탓에 11 세기부터 인도의 중부와 북부를 휩쓸며 우상 파괴의 명분 하에 아름다운 사원들을 사정없이 파괴해버렸던 회교도들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카쥬라호의 사원들은 그들 찬델라 왕조가 주로 섬겼던 시바 비시누 신을 모신 것들인데. 이 사원들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사원의 신전들을 둘러싸고 빽빽하게 새겨져 있는 조각들이다. 신전의 벽에다가 온갖 신과 여신을 비롯하여 요정이나 동물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묘사했을 뿐 아니라 병사와 연주인 그리고 당대 사람들의 일상 순간들처럼 실제 하는 것들을 묘사하여 사원을 장식한 조각들을 뜯어볼수록 생생한 감을 주고 있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흥미를 끄는 것은 남녀의 교합상인 미투나 ()들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자세로 남녀의 상이 얽혀 있는 이 미투나 상들은 과연 무슨 의도에서 이처럼 당당하게 새겨져 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그 동기나 이유를 확실하게 밝힌 사람은 아직도 없다.

 

우리식 관념으로 지명에 호가 붙어 호수와 연관 있는가 했더니 지명이 카쥬라호란다. 유네스코 지정 문화유산이다. 동서남북으로 넓은 지역에 사원들이 산재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서군이 가장 아름답고 뛰어나다. 서군 사원은 11세기 경에 세워진 힌두교 사원들로 백성들을 힌두교도로 끌어들이기 위해 눈요기를 만들어 놨다고 가이드는 말한다.

 

에로틱 조각. 다양한 체위와 기교로 성교하는 장면들은 거의 아크로바트에 가깝다. 물 반 고기 반 격으로 힌두신들 반 에로틱 조각 반이다. 배치는 위쪽에 에로틱 조각, 아래 쪽에 힌두 신 조각, 한 줄은 에로틱, 한 줄은 신들 아니면 적절하게 섞어놓아 힌두 신들을 꼭 보도록 배치했다.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가 15세기 유물이므로 더욱 앞선 시대의 유물이지만 더욱 정교하고 거의 훼손되지 않았다.

 

 

 자이나교 창시자 마하비라

 

 소박한 자이나교 동군 사원

 

동군 사원에는 자이나교 사원이 있었다. 베다 시대의 동물 희생제에서 만연했던 살생 관행과 관념에 반기를 든 한 종파에 속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창조신을 믿지 않는 자이나교는 어떠한 생명도 살상하지 않을 것을 윤리의 핵심으로 삼고 인간의 본성을 완전하게 하는 것을 종교적 이상으로 여기고 있다.

 

불교와 동시대 경에 생겼다고 한다. 교주는 무소유와 살생 금지를 몸으로 실천하는 고행을 한다. 옷을 입지 않으며 털 부채와 물 주전자만 가지고 다닌다. 털 부채는 앉을 때 미물이 다칠까 봐 쓸어내는 도구로 쓰인다. 무소유를 실천하기 위해 머물지 않고 떠돌아 다닌다. 털에 난 기생물을 해 할까 봐 몸에 난 털을 정기적으로 면도 하지 않고 뽑는다. 교도들은 생명을 해칠까봐 농사를 짓지 않는다. 대신 상업에 종사하기에 인도의 최고 갑부들 대부분이 자이나 교도들 이란다.

 

 

 현지인 가이드

 

현지인 가이드. 전형적으로 잘 생긴 북부 인도인 모습이다. 거무스런 피부에 털과 수염이 많고 키가 크다. 아리안계란다. 서울대에서 어학연수 5개월을 했다는데 믿기지 않게 아주 한국말을 능숙하게 한다. 한국인들이 하는 평상어를 다 알아듣고 격언, 성어를 인용하기도 한다. 어학연수를 하고 경찰서에서 익혔다고 한다. 왜 경찰서냐?  24 시간 내내 붐비는 곳이라 끊임없이 대화하기 좋았다나.

 

그가 말한 재미있는 얘기. 그가 처음 가이드를 할 때 한국어에 아직 어눌하고 발음을 제대로 못했던 시절. 카쥬라호의 에로틱한 성교 조각으로 이루어진 서쪽 사원군 관광 설명을 마치고 화장실 앞에서 자유시간을 준다고 외친 말. 10 분간 자위시간’ 

 

 특급열차 내부

 

특급 열차. 침대열차와 비슷한 분위기다. 침대 대신 의자들이 3좌석-통로-2좌석으로 도열되어져 있다. 제켜지는 의자이지만 고장나 애초부터 누워 있는 것도 있다. 앞 좌석에 붙어있는 보조 테이블의 고정쇠는 기능도 잘 안되지만 모양이 제각각이다. 폐차 일보 직전의 열차들이다. 앞 객차로 가니 냉방이 안되고 연결의자로 되어 있다. 창문에는 유리 대신 철망이 달려 있다. 감기가 들어 에어컨을 피할 겸 내내 거기에 서 있었다.

 

3인 연결좌석에 있는 한 4가족은 부부와 초등생으로 보이는 아들과 중고생으로 보이는 딸이다. 딸은 까무잡잡한 피부에 눈이 새카맣고 반짝인다. 청바지를 입었는데 자태가 카쥬라호 에로틱 사원에 있는 여인 상처럼 어린 나이에 가슴에 볼륨이 있고 S자 굴곡이 있다. 인도의 처녀들은 모두 아름답다. 하나 결혼 후엔 할 일이 없어 볼품없이 뚱뚱해진다고 한다. 인도의 아이들도 모두 예쁘다.

 

많은 사람들이 휴대폰을 가지고 있었고 어디론가 통화를 했다. 중간쯤 한 걸인이 올라왔다. 담배 한대를 피우더니 객차 통로와 좌석 사이를 열심히 걸레질 하듯 빗질을 한다. 그리곤 앉아 있는 사람에게 손을 내민다.  서 있는 내 곁에 후식향을 팔던 할머니가 쪼구려 앉더니 가방을 펼친다. 거기에는 뭔가 담긴 신문 봉지가 십여 개 있다. 그 중 먹던 거 하나를 펼친다. 껍질을 까지 않은 땅콩이다. 껍질을 까서 입에 넣는다. 다음 역에서 내린 자리에는 땅콩껍질이 널러져 있었다

 

어울리지 않게 침대 객차 입구 옆에는 전산 처리된 탑승자 예약 목록이 붙여져 있었고 검표원은 전산 처리된 좌석 현황표를 가지고 확인하러 다닌다. IT 강국이라 그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