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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지대 / 줌파 라히피

felixwoo 2014. 6. 15. 18:22

물처럼 고인 상처..줌파 라히리 신작 '저지대' 연합뉴스 | 2014.04.02

 

신창용 기자 = 인도계 미국 소설가 줌파 라히리(47)는 미국에 발을 딛고 사는 인도 이민자들의 삶을 그려온 작가로 유명하다.

 

소설은 1960년대 인도 캘커타 외곽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15개월 터울의 형제인 수바시와 우다얀의 유년기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둘은 쌍둥이처럼 친밀한 사이지만 성격은 정반대다. 형인 수바시는 순종적이고 차분한 반면 동생인 우다얀은 자주적이고 열정적이었다. "수바시는 나무껍질이나 풀잎과 분간하기 어려운 어떤 동물처럼 자신의 존재감을 최소화하려고 애썼다." 이들의 삶은 서로 다른 대학을 다니고부터 뚜렷하게 갈림길을 걷는다. 수바시는 박사과정을 밟고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고 우다얀은 농민이 탄압당하는 인도의 현실을 목격하고 마오쩌둥주의를 받아들여 사회운동에 몰두한다.

 

형제는 편지로 소식을 전하며 인도와 미국, 서로 다른 대륙에서 젊은 시기를 보낸다. 시간이 흐르며 소식이 뜸해지던 어느 날 수바시는 우다얀이 죽었다는 짤막한 전보를 받는다. 비극적인 소식을 듣자마자 캘커타로 돌아온 수바시는 동생이 혁명 세력을 제거하려는 경찰들에게 목숨을 잃었음을 알게 된다. 아울러 제수인 가우리가 배 속에 아기를 가졌다는 소식도 듣는다. 수바시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동생의 여자를 아내로 삼는다. 가우리에게 새로운 나라에서 새롭게 출발하자며 함께 미국행을 택한다.

 

그러나 수바시의 애정은 되레 가우리에게 전 남편이자 그의 동생인 우다얀을 떠올리게 한다. 더군다나 우다얀이 총살당하는 모습을 눈앞에서 목격한 가우리였다. 가우리는 수바시의 헌신적인 노력과 배려를 배반하고 딸 벨라까지 버리고 떠난다. 집을 나간 뒤로는 30여 년 동안이나 자식을 찾지 않는다.

 

소설의 제목은 중의적이다. '저지대'는 일차적으로 형제가 자랐던 주거지를 가리킨다. 영국인이 드나들던 골프장과 인도인 촌락 사이에 자리한 이곳은 식민지였던 인도와 독립국 인도를 가르는 상징적인 경계다.

 

아울러 '저지대'는 인물들 각각의 내면을 상징한다. 우기가 끝나면 저지대에 고이는 물처럼 형 수바시와 아내 가우리, 그리고 부모님의 머릿속에는 동생 우다얀이 혁명 운동을 하다가 총살당한 기억이 깊게 고였다.

 

이들은 캘커타에서, 미국 로드아일랜드에서 나름의 삶을 살아가지만 한번 각인된 상처는 지우기 어렵고, 산 사람들의 뇌리에 남는다. 우다얀에 관한 기억은 아내 가우리와 딸 벨라, 나아가 벨라의 딸인 메그나의 삶에까지 대를 이어 영향을 끼친다.

 

"한때 이 주거지 안에 길쭉한 연못 두 개가 나란히 있었다. 연못 뒤로는 그리 넓지 않은 저지대가 펼쳐져 있었다. 우기가 끝나면 연못의 수위가 높아져서 두 연못 사이에 쌓은 제방이 보이지 않았다. 저지대에도 1미터 안팎의 깊이로 빗물이 들어찼으며, 물은 오랫동안 그대로 고여 있었다."(13)

 

라히리는 대하소설급의 이 작품에서 인도의 거친 현대사가 개인들의 삶에 남긴 쓰라린 상처를 무자비할 정도로 명료하게 그린다. "과거는 흘러가버리는 것이 아니라 저지대에 고여 있다 어느 순간 마법의 반지처럼 우리의 현재 속에 고요히 맞물려 들어온다."(소설가 권여선 씨)

 

독립과 전쟁과 분단을 거친 이 땅의 독자들에게도 호소력이 큰 책이다. 다만, 모성애까지 거부하면서 자아 찾기를 시도하는 가우리의 문제적 삶은 이질감이 큰 편이라 독자들에 따라서는 저자가 가우리라는 인물을 성공적으로 만들어내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듯하다.

 

소설은 현지에서는 지난해 출간돼 내셔널북어워드 최종심과 맨부커상 최종심에 각각 오르며 화제를 모았다. 번역가 서창렬 씨가 우리말로 옮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