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1909) / 나쓰메 소세키 저 / 윤상인 역
‘나는 나 자신의 의지를 사회에 실현시키려고 하고, 내 의지로 인해서 사회가 조금이라도 내가 바라는 대로 되었다는 확증을 가지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가 없어. 바로 그런 점에 나라는 인간의 존재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그 당시에는 아버지가 금으로 보였다. 많은 선배들도 금으로 보였다.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은 모두 금으로 보였다. 그래서 자신의 도금이 고통스럽게 여겨졌다. 한시바삐 금이 되고 싶어서 안달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도금으로 가려져 있던 다른 사람들의 바탕쇠를 자신의 눈으로 직접 들여야 보고 나니 갑자기 이제까지 매달려 왔던 것이 부질없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자기가 무엇 때문에 이 세상에 태어났는지를 골똘히 생각해 보는 것은 바로 그런 때였다…그는 인간이란 어떤 목적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서야 비로서 어떤 목적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자신의 뇌리에 어떤 욕망이나 욕구가 생길 때마다 그것을 충족시키는 것을 자기의 목적으로 삼고 살아왔다.’
다이스케는 대학교를 졸업했지만 기업가인 아버지와 형의 도움으로 무위도식하는 고등유민이다. 게으름을 구가함으로서 속악한 부르주아적 삶의 정형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획득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정신적 우월감을 가져다줄 취미와 감각의 연마에는 많은 정력과 시간을 투자한다.
젊었을 때 좋아했던 여인을 친구가 요청하자 이성적인 힘에 의해 결혼을 주선하는 우를 범했다. 세월은 친구를 변질시켜 그는 건실한 삶을 하지도 그녀를 사랑하지도 않게 되었다. 친구의 아내를 보는 그의 마음은 안타까움에서 사랑으로 변한다.
아버지가 주선한 혼사를 거부하며 속물적 부르주아에 대한 비판 의지를 관철하지만 친구의 아내를 아내로 삼는 길을 택하며 다이스케의 도덕적 우위는 흔들리게 된다. 그러한 부도덕을 자연의 명령에 순응한다는 논리로 대응하지만 친구에게 절교를 당하고 아버지와 형으로부터 의절을 당한다.
‘이미 결혼한 한 쌍의 부부는 양쪽 다 세간에서 부정이라 일컫는 관념에 사로잡혀서 결혼이라는 과거로 인해 빚어진 불행과 항상 마주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하늘의 뜻은 따르지만 인간의 법도를 어기는 사랑이란 보통 그 사랑의 주체가 죽어야만 비로소 사회로부터 인정을 받게 된다... 자연의 아들이 될 것인가, 아니면 의지의 인간이 될 것인가 하는 사이에서 다이스케는 번민했다.’
‘모든 일이 순리대로 되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두려웠다. 자신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운명을 이끌어냈으면서도 그 운명이라는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서 높은 절벽의 끝까지 밀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살다보면 가끔은 자연의 길이 인간의 길과 상이해지는 상황과 맞닥치게 된다. 그럴 때 어느게 옳은 길인가보다는 어느게 유리한 가로 판단을 하고 선택하게 된다. 그렇게 길들여져 왔고 그렇게 사는 게 온화한 삶을 주었다. 가지않은 길에 대해 후회와 번민이 없지는 않지만 올바른 선택이라 믿으며 살아간다.
소세키는 미묘한 심리를 화려하지 않은 일상의 언어와 비유로 풀어간다. 마치 내가 그가 된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그런 점이 훌륭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