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EL/해외 여행

(몽골) 테를지 국립공원

felixwoo 2024. 6. 20. 15:57

테를지 국립공원에 접어들자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풍경들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산세가 서서히 일어나며 평지에 있는 숲 사이로 강이 흐른다. 더 들어가자 몬세라토에서 봤던 암석산이 초원 구릉지에 드라마틱하게 산재해 있다. 드넓은 초원에는  전통 게르들이 자연과 어울려 소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오늘 일박할 전통식 게르는 초원인 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었다. 게르에는 가운데 장작 난로를 중심으로 침대 세개와 전통 문양을 한 소박한 가구들이 원형으로 배치되어 있고, 밖에 별도로 공동 화장실과 세면장이 있었다.  여행사와의 계약에는 화장실과 샤워장이 있는 현대식 게르였으나 확보가 안되어 재래식 게르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조석엔 한 자릿수 기온으로 쌀쌀하고 바람까지 불어 방풍과 보온이 가능한 경량 패딩 자켓이 유용하다. 장작에 불을 지피니 게르내에  훈기가 돈다. 두시간 뒤 일어나 밤하늘을 보기로 하고 장작을 충분히 넣은 후 잠을 청했다. 새벽 한시 알람소리에 깨어보니 실내가 싸늘하다. 난로 안 장작은 이미 다 탔고 불씨도 꺼졌다. 

 

게르를 나와 별을 보기위해 불빛이 없는 초원 언덕으로 올랐다. 고개를 드니 밤하늘에서 별들이 쏟아진다. 언제 이렇게 밝고 많은 별들을 봤던가. 소시적 앞마당 평상에 누워서 봤던 기억이 있지만 정작 기억은 밤하늘 별들보다는 봤다는 희미한 기억뿐이다. 아내가 흐르는 별을 보고 외쳤다. 반짝이는 별들사이로 별 하나가 움직이고 있었다. 북두칠성 같은 별자리도 선명하게 보였다.

 

다행이 옆집에서 불씨를 얻어 불을 피웠다. 주어진 장작 양으로 온기를 유지하려면 삼사십분 단위로 장작을 하나씩 넣어야 한단다. 결국 불당번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인데 예전 몽골인들이 그렇게 했을까? 불을 피우고 훈기 속에서 잠 들어 잔열로 밤을 버티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2024.06.12)

 

 

아침 일찍 일어나 초원에 핀 야생화들을 구경하며 뒷 동산을 올랐다. 정상에 오르니 안보이던 정상이 또 나온다. 그래도 주위로 펼쳐진 풍광이 너무 환상적이고 공기는 맑다. 사방을 둘러싼 초원 구릉지에 바위산들이 수석처럼 장식하고 있다. 초원 위에는 상업용 게르들이 장난감처럼 도열해 있고 청정한 하늘은 끝이 없다.

 

조식 후 떠날 준비 과정에서 아내가 계단에서 발를 삐었다.  발목이 퉁퉁 붓고 통증으로 걸을 수 없다. 열트산 야생화 탐방 트레킹은 아들만 보내고 가이드의 도움으로 나와 아내는 현지 병원에 갔다. 마을은 넓었으나 단층 가옥들 뿐이고 도로변으로 간혹 2-3층 짜리 건물이 보인다. 병원은 이층짜리 건물 몇개로 이루어져 응급실도 있는 규모있는 병원이었으나 모든 것들이 후락하다.

 

진찰실은 이층이고 엑스레이실은 일층이었다. 엑스레이를 잘못 찍어 계단을 몇번씩 오르내렸다. 엑스레이 촬영실에선 같이 간 일행들이 같이 피폭되었고, 결과는 우리를 데리고 온 현지인 휴대폰으로 전송되었다. 의사가 현지인 휴대폰 사진을 이리저리 확대해 보고 번역기를 돌려 뼈에는 이상이 없고 인대 손상이라며 기브스하란다.  

 

현지인이 사라졌다 한참만에 나타났다. 기브스할 석회를 사러 외부에 멀리 갔었나보다. 다른 건물에 있는 응급실로 이동하여 기브스를 했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오르락 내리락하며 상당히 걸어야 하는 병원 동선에 한숨이 난다. 처방약은 현지 약초 엑기스였다. 거기에 약국은 병원내에 있지 않고 멀리 있어 차로 가야했다. 결국 우리나라에 와서 기브스를 푸니 잘못 처치하여 기브스 돌출 부위가 발목을 찔러 아내가 내내 아파했었다. 편한 보호대로 바꾸고 소염진통제를 복용했다.

 

테를지가 우리로 치면 수도권인데 우리의 동네 의원보다도 못한 병원일 정도로 의료 인프라가 열악했다. 이곳 사람들은 선택권이 없이 이렇게 살아야 한다. 우리가 잘 사는 것은 열심히 일해서라기 보다는 잘 사는 나라에 태어났기 때문이란 말이 문득 생각났다. 

 

 

 

점심에 허르헉을 먹었다. 허르헉은 물이 귀한 이곳에서 물대신 달군 돌을 넣어 양고기를 익힌 음식이다. 누린내때문에 못 먹는다는 등 들은게 많아 불안했는데 의외로 맛있다. 고기 두 덩어리와 통감자 그리고 우유차를 한잔반을 먹으니 든든하다.  

 

말에 올라타니 낙타보다 불편했다. 돌과 도랑이 있는 거친 흙길이어서 많이 흔들리고 불안하다. 일행들은 즐겁고 괜찮아 보이는데...

 

버스를 타고 거북바위를 거쳐 아라야발 사원에 도착했다. 한참을 올라가니 티벳 불교 사찰이 나타났다.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절을 둘러보았다. 그리 크지도 웅장하지도 않은 사찰이다. 이곳에 오는 이유는 절보다는 테를지 국립공원의 다른 뷰를 보기 위함인 듯하다. 

 

오늘 밤은 게르 안에 화장실과 샤워시설이 갖춰진 현대식 게르에 묵는다. 밖에 어린이 놀이터도 있고 리조트처럼 조성되어 있다. 온돌처럼 바닥 난방이 되어 난로도 필요 없다. 하지만 지난 밤에 묵었던 전통 게르는  초원 언덕배기에 있어 풍광이 수려하고 문 밖이 바로 자연이었으나 이곳은 게르의 편리함이 다다.

 

여행사의 계약 위반이 뜻밖에 전통 게르라는 좋은 체험을 하게 했지만, 거기서 아내가 발을 삐어 반쪽짜리 여행에 고통이 더해졌다. 이래서 인생은새옹지마구나. (2024.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