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EL/읽기

슬픈 열대 (1955) / 레비-스트로스 저 / 박옥줄 역 (1998)

felixwoo 2025. 1. 20. 16:17

이 책은 레비 스트로스가 여행을 떠나게 된 과정, 브라질 아마존 지역의 부족들을 관찰한 내용, 아시아를 관찰한 내용, 유럽으로 돌아오는 내용을 다룬 기행문이다. 그는 1930년대의 관찰 경험을 20년이 지난 후에 저술한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그는 의미도 모르는 채 지구 끝까지 경험을 추구하러 넋을 잃고 다녔다고 했다.

 

그는 이 책에서 서양 문명, 원시 사회, 동양 문명의 공통점을 분석하고자 하며 문명과 야만이라는 이분법 사유를 거부한다. 그는 서양의 발전된 문명에도 그리고 원시부족들의 문명에도 동양의 문명에도 긍정 혹은 부정의 표현을 일절하지 않는다

 

백인들은 원주민들이 동물이기를 바랐지만, 원주민들는 백인들이 신들은 아닐 거라고 의심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양편이 모두 마찬가지로 무지하였으나, 그래도 원주민들 생각이 보다 인간적인 가치를 지녔다.

 

한 종족이 지닌 관습들의 전체적 집결에는 언제나 어떤 특정한 양식이 존재한다. 관습들이 체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인간사회란 재구성이 가능한 관념의 저장고로부터 어떤 결합들을 선택해낸다. 모든 관습의 목록을 작성하면 우리들 사회가 실제로 어떤 것을 채택하느냐를 단지 식별하기만 하면 될 것이다. 그의 이러한 주장에서 구조주의의 원형이 떠오른다.

 

안면도식은 인간으로서의 준엄을 부여하였고, 자연에서 문화로, 무정신의 동물에서 문명화된 인간을 나타내는 경계선이었다. 또한 사회적 지위에 따른 상이한 양식과 구성을 지님으로써 사회적 기능을 보유하였다.

 

각각의 사회마다 이중의 대립성이 존재한다. 첫째로 삼분조직과 양분조직, 대칭성과 비대칭성의 조직형태가 서로 대치되고 있다. 둘째로는 상보성에 기반을 둔 사회기구와 상하의 서열관계에 기반을 둔 사회기구가 서로 대치되고 있다. 색상에서 보색관계로 표현될 때 제일 아름답듯이 인간 사회도 그런가 보다.

 

어떤 혈족은 호화롭게 살고, 어떤 혈족은 빈곤하게 산다. 이같은 상이성은 '부' 와 '빈곤' 사이의 차이라기보다는 '시골뜨기'와 '세련된 사람' 간의 차이라고 간주해야 할 것이다.

 

인간사회에 보편적 현상인 근친금혼에 대한 그의 견해는 한 집단이 여자를 교환함으로써 서로의 공통적인 유대와 협력관계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봤다. 즉 사회적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종족의 수가 얼마 안되는 남비콰라족은 모두 친족관계를 이루고 있는데, 결혼을 할 때 우선적으로 여자형제의 딸인 질녀 또는 아버지의 여자형제의 딸이나 어머니의 남자형제을 택하는 '교차사촌'을 택한다.

 

남비콰라족은 대단히 빈약한 환경 속에서 유랑생활을 해야 하므로 아이가 젖을 떼기 전까지는 부부간의 성교가 금지되어 있고 필요한 경우는 유산을 하기 위해 갖은 물리적 방법이나 약초의 도움을 빌리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 에서 나왔던 얘기와 유사하다.

 

사랑하는 두사람이 공공연하게 벌이는 사랑의 유희 중에도 발기가 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들이 추구하는 쾌락은 육체적인 것보다는  유희적, 감정적인 데 있는 듯하다. 브라질 인디언들에게서 수치라는 것은 육체의 노출이 아니라 마음이 평정한가 아니면 흥분된 상태에 있는가 하는데 따른 것이다.

 

남비콰라족에서는 정치적 권력은 세습적인 것이 아니라, 여론을 살펴본 후 족장이 대중에게서 가장 호감을 받는 사람을 후계자로 지명한다. '족장은 전쟁을 할 때 선두에 서서 싸우는 사람이다.' 라는 말처럼 특권적 권위보다는 집단의 요구로 발생하는 필요성을 충족시켜주는 사람이다. 족장은 동의를 부여받을 때만 존재하며, 대신 족장은 일부다처혼이라는 정서적 만족감을 제공받는다. 족장은 권력을 소유하지만 관대해야 한다.

 

레비 스트로스는 가장 단순한 표현으로 환원되어 있는 사회를 찾아 다녔다. 그가 본 중 남비콰라족의 사회가 오직 인간만을 발견할 수 있었을 정도로 단순화된 상태에 있었다. 

 

그는 식인풍습을 어떻게 바라볼까? 그는 원주민들이 영혼과 육체의 일체화나 중화 또는 종교적 의식의 차원에서 거행될 뿐이라 봤다. 조상의 신체의 일부분이나, 적의 시체의 살점을 먹음으로써 죽은 자의 덕을 획득하려 하거나 또는 그 힘을 중화시키고자 한다. 


루소와 레비 스트로스는 대부분의 인간사회에 공통적인 특성을 구분해냄으로써 우리 미래가 지향해야할 어떤 사회 상태 모델을 설정했는데 이와 같은 모델에 가장 접근하는 사회가 '신석기 시대' 라고 생각했다. 신석기 시대에서는 인간들은 그의 안전에 필수적인 대부분의 발명품들을 이미 만들어냈다. 인간들은 추위와 배고픔에서 벗어나 있었고 생각할 여유도 지니고 있었다. 그후 인간의 힘이 증대함에 따라 불행도 커지게 되었기에 신석기 시대 같은 중간지역을 고수하는 것이 인간 행복에 더 좋을거라 생각했다.

 

그에게 악의 기원이란 육체나 욕망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 문명의 역사로서, 신비스러운 조화의 구조를 지녔던 원시적 과거가 이제 우리의 눈앞에서 파괴되고 소멸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열대 원주민 사회는 슬픈 것이다.

 

불교에는 내세가 없다. 모든 것이 삶의 근원적 비판으로 환원되며 그 속에서 깨달으면 사물과 인간의 의미에 대한 거부로서 길을 열어준다. 후에 고안된 기독교는 내세를 설정하고 희망, 위협, 심판도 새로 다듬었다. 따라서 이슬람에게 남겨진 것은 현세와 내세의 합병이었다. 현세의 정치가 정신세계의 신학이 되어버렸다.

 

레비 스트로스는 대표적인 인류학자이자 구조주의자이다. 구조주의는 각 집단 간의 일정한 규칙을 발견하고 이 사이에서 발견되는 일관된 공통점, 보편적인 원리를 통찰한다. 이 관점에서 책을 바라보면 레비 스트로스는 결국 어떤 부족, 국가에 따라 사람을 구분짓거나 우열을 가리지 않고 그 사이의 공통점을 찾아내고자 노력한 학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