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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2011) / 유발 하라리 저 / 조현욱 역 (2015)

felixwoo 2025. 4. 30. 11:24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 는 '왜 각 대륙들마다 문명의 발달 속도에 차이가 생겨났을까?' 라는 의문을 풀기 위해 인간 역사를 추적하고 비교 분석하였다. 그리고 내린 추론은 지역 사람들의 타고난 지능의 차이가 아니라 환경의 차이 때문이라 했다.

 

이와 달리 역사학자인 유발 하라리는 인류 역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분석하여 사피엔스 종은 어떻게 진화하여왔는가 그리고 어떻게 될 것인가를 통찰했다.

 

6백만 년전 아프리카 한구석에 별로 중요치 않은 동물이었던 호모 사피엔스가 자연 진화 과정을 거쳐 지금은 신의 영역인 지적 설계의 경지에 이르렀다.

 

하지만 미래에는 스스로 사멸하던지, 유전자 조작으로 새로운 종으로 변신하든,  컴퓨터 프로그램 같이 유기체 진화의 법칙과는 무관한 새로운 진화과정이 전개되든, 우리가 더 이상 호모 사피엔스가 아니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그는 예상했다.  끔직한 미래이지만 AI, 로봇이 경쟁적으로 개발되는 현실을 보면 마냥 낙관적으로 보이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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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사피엔스의 역사의 진로를 형성한 것은 세 개의 혁명이었다. 약 7만년 전 일어난 인지혁명, 약 12,000년 전 발생한 농업혁명 그리고 5백년 전에 시작한 과학혁명이다.

 

(인지혁명)

 

인간은 서면서 높은 시야와 놀고 있는 손을 얻었지만 산도가 좁아져 이른 출산이 자연선택을 받았다. 미숙한 상태로 태어나기 때문에 교육을 받고 사회화할 수 있는 기간이 어떤 동물보다 길다. 인간의 사회적 능력이 뛰어난 것도 이 덕이다.

 

약 7만 년 전부터 배, 기름 등잔, 화살, 바늘 (따뜻한 옷)을 발명하는 등 사피엔스에게 인지혁명이 일어났다. 인지혁명이란 약 7만년 전부터 3만년 전 사이에 출현한 새로운 사고방식과 의사소통 방식을 말한다. 남 얘기 좋아하기(뒷담화이론), 허구를 말하는 능력으로 더 크고 안정된 무리를 형성했으며 공통의 신화는 인간의 대규모 협력을 이룰 수 있었다.

 

건강에 유익한 음식을 다양하게 먹고, 주당 일하는 시간도 상대적으로 짧으며, 전염병도 드물었으니, 농경 이전 수렵채집 사회가 '최초의 풍요사회' 였다.

 

(농업혁명)

 

우리 조상들이 잡거나 채취했던 수천 종의 동물과 식물 중에 농업과 목축업에 맞는 후보는 몇 되지 않았다. 이들 종은 특정 장소에 살았고, 그 장소들이 바로 농업혁명이 일어난 지역이다. 

 

학자들은 농업혁명이 인간성을 향한 위대한 도약이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인구폭발과 방자한 엘리트를 낳았다. 농부는 수렵채집인보다 더 열심히 일했으나 더 열악한 식사를 했다.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였다. 더욱 많은 사람들을 더욱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 있게 만드는 능력이 농업혁명이었고 덫이었다.

 

좀 더 쉬운 삶을 추구한 결과 도 어렵게 되어버린 셈이다. 사치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의존하기 시작하며 마침내 그것 없이 살 수 없는 지경이 된다.

 

가축이 된 닭이나 소는 진화적 성공의 사례이겠지만, 역사상 가장 비참한 동물이기도 하다. 소의 경우 우유 생산을 위해 출생 직후 새끼를 도살하고 어미의 젖을 최대한 짜낸 뒤 다시 임신을 시킨다. 자연적 진화와는 먼 얘기다.

 

근대 후기까지도 인류의 90퍼센트는 아침마다 일어나 구슬 같은 땀을 흘리며 땅을 가는 농부였다. 그들의 잉여 생산이 소수의 엘리트를 먹여 살렸다. 왕, 관료, 병사, 사제, 예술가, 사색가... 역사책에 기록된 것은 이들 엘리트의 이야기다.

 

상상의 질서는 언제나 붕괴의 위험을 안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신화 (종교, 국가, 사법체계 등) 에 기반하고 있고, 신화는 사람들이 신봉하지 않으면 사라지기 때문이다.

 

중세 귀족은 개인주의를 믿지 않았다. 사람의 가치는 사회적 위계질서 속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느냐에 따라 결정되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서구인은 개인주의를 신봉한다. 자신의 진장한 가치는 밖에서가 아니라 내면에서 퍼져 나온다고 말이다.

 

기원전 3500년 경 수메르 천재들이 뇌 바깥에 정보를 저장하고 처리하는 시스템을 발명했다. 이는 '쓰기'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처음에는 숫자였지만 문자로 확대되었다.

 

히브리 성경, 그리스의 일리아드, 힌두교의 마하바라타, 불교의 팔리어 경전은 모두 구전 작품으로 시작했다. 이들 작품은 입에서 입으로 수많은 세대를 거치며 전수되었으며, 설사 문자가 발명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살아남았을 것이다.

 

문자체계로 인해 인간이 세계를 생각하는 방식과 세계를 보는 방식이 점차 바뀌었으며, 자유연상과 전체론적 사고는 칸막이와 관료제에 자리를 내주었다.

 

대부분의 경우 각각의 위계질서는 일련의 우연한 상황에서 비롯되었고, 이후 여러 세대에 걸쳐 여러 집단들이 저마다 이해관계를 갖게 됨에 따라 영속성을 얻고 세련되어졌다.

 

(인류의 통합)

 

신화와 허구는 사람들을 출생 직후부터 길들여 특정한 방식으로 생각하고, 특정한 기준에 맞게 처신하며, 특정한 것을 원하고, 특정한 규칙을 준수하도록 만들었다. 그럼으로써 수백만 명이 효과적으로 협력할 수 있게 해주는 인공적 본능을 창조했다. 이른바 '문화'다.

 

프랑스 혁명 이래 세계가 점차 평등과 자유를 근본적 가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두 가치는 서로 모순된다. 평등을 보장하는 방법은 형편이 더 나은 사람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 이외에 없다. 어떤 문화에 속한 인간이든 누구나 상반되는 신념을 지닐 것이며 서로 상충하는 가치에 찢길 것이다. 이것이 '인지 부조화'다.

 

기원전 첫 밀레니움 동안, 보편적 질서가 될 잠재력이 있는 후보 세가지가 출현했다. 화폐 질서, 제국의 질서, 종교의 질서였다. 돈은 언어나 국법, 문화, 종교, 사회적 관습보다 마음이 열려져 있고 모든 질서보다 영향력이 컸다.

 

우리는 약자가 이기는 것을 보고 싶어하지만 역사에 정의란 없다. 제국은 인류의 다양성을 급속히 축소시킨다. 인류의 모든 문화는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제국과 제국주의 문명의 유산이다. 

 

종교는 절대적 최고자가 우리의 법을 정해 놨다고 단언한다. 일신교, 이신교, 다신교, 애니미즘 의 수많은 종교 중 일신론이 승리한 듯 보이지만, 거기에도 모든 종교의 행위와 관례가 섞여있는 '제설 혼합주의'다.  

 

역사의 역학은 인간의 복지를 향상시키는 방향을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역사상 성공한 문화가 반드시 호모 사피엔스에게 가장 좋은 문화라는 생각은 근거가 없다.

 

(과학혁명)

 

과학혁명을 출범시킨 위대한 발견은 인류는 가장 중요한 질문들에대한 해답을 모른다는 발견이었다. 근대 이전의 전통 지식이었던 이슬람, 기독교, 불교, 유교는 세상에 알아야 할 중요한 모든 것은 이미 알려져 있다고 단언했다.

 

세계의 군대는 인류의 과학연구와 기술개발의 대부분을 선도하고, 자금을 대고, 방향을 조정한다. 괴혈병의 효과적인 치료법이 발견된 덕분에, 영국은 세계의 대양을 지배하고 지구 반대편에 군대를 보내는 능력이 크게 향상되었다.

 

중국과 페르시아인에게 부족했던 것은 증기기관 같은 기술적 발명이 아니었다. 그거라면 베끼거나 사들일 수도 있었다. 이들에게 부족한 것은 서구에서 여러 세기에 걸쳐 형성되고 성숙한 가치, 신화, 사법기구, 사회정치적  구조였다. 이런 것들은 빠르게 복사하거나 내면화할 수 없었다.

 

유럽인은 기술적인 우위를 누리기 전부터 과학적이고 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습관이 있었다. 유럽 제국주의자들은 새 영토뿐만 아니라 새 지식을 획득한다는 희망을 안고 대양을 향해 떠났다.

 

제국에 의해 축적된 새로운 지식은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피지배 민족을 이롭게 하고 이들에게 '진보'의 혜택을 가져다 줄 수 있었다. 의료와 교육을 제공하고, 철로와 운하를 건설하며, 정의와 번영을 보장할 수 있었다. 제국주의자들은 자신의 제국이 거대한 착취 사업이 아니라 비유럽 인종을 위해 시행된 이타적 프로젝트라고 주장했다. 일제강제점령기에 대해 일본이 주장하는 내용도 같다.

 

정복자들은 과학자들에게 정보와 보호를 제공하고, 온갖 종류의 이상하고 흥미진진한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지구 구석구석에 과학적 사고방식을 퍼뜨림으로써 보답했다. 제국의 자원이 없었다면 근대 과학이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을지도 의심스럽다.

 

파이를 자르는 방법은 수없이 많지만, 어느 방법도 방법도 파이를 더 크게 만들지는 못한다. 수많은 문화권에서 돈을 많이 버는 것을 죄악이라고 결론 내린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돈을 번다는 것은 남의 돈을 빼앗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신용은 오늘의 파이와 내일의 파이 간의 차이이며, 미래에 대한 신뢰를 기초로 한 새로운 시스템이다. 이것이 제국주의적 자본주의의 마법의 순환이었다. 신용대출로 새 발견을 할 자금을 공급했고, 발견은 식민지로 이어졌고, 식민지는 수익을 제공했으며, 수익은 신뢰를 만들어냈고, 신뢰는 더 많은 신용대출로 바뀌었다. 네덜란드 제국을 세운 것은 국가가 아니라 상인들이었다.

 

신용등급은 그 나라가 부채를 갚을 가능성을 가리킨다. 그래서 이 나라는 싼 대가로 많은 자본을 모아 좋은 교육제도를 지원하고, 하이테크 산업을 육성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

 

기독교나 나치즘 같은 종교는 불타는 증오심 때문에 수백만 명을 살해했다. 자본주의는 차가운 무관심과 탐욕 때문에 수백만 명을 살해했다. 노예무역은 인종적 증오가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 자행된 끔직한 범죄였다.

 

윤리의 역사는 아무도 그에 맞춰 살 수 없는 훌륭한 이상들로 점철된 슬픈 이야기다. 대부분의 기독교인은 예수를 모방하지 않았고, 대부분의 불교도는 부처를 따르는 데 실패했으며, 대부분의 유생들은 공자를 울화통 터지게 했을 것이다.

 

국가는 상상 속의 존재다. 예를 들면 누가 시리아인이 되고 누가 레바논인이 될 것인가를 결정한 것은 프랑스인들이었다. 프랑스 외교관들이 지역의 역사와 지리, 경제를 무시하고 모래 위에 아무렇게나 그어놓은 경계선의 산물이다. 

 

우리의 시대는 평화를 사랑하는 엘리트가 세계를 지배하는 역사상 최초의 시대다. 점점 치밀해지는 국제적 연결망은 국가들의 독립성을 서서히 약회시켜, 어는 한 나라가 일방적으로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을 줄인다.

 

개인이 각자의 삶의 길을 결정하는 데 전례없이 큰 힘을 누리게 되면서, 우리는 남에게 헌신하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공동체와 가족이 해체되고 다들 점점 더 외로워지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의미 없는 삶은 아무리 안락할지라도 끔찍한 시련이다.

 

이제 호모 사피엔스는 자연선택의 법칙을 깨기 시작하면서, 그것을 지적설계의 법칙으로 대체하고 있다. 40억 년 가까운 세월 동안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자연 선택의 법칙에 따라 진화했다. 

 

우리가 우리의 유전자를 주물럭거린다고 해서 반드시 멸종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더 이상 호모 사피엔스가 아니게 될 가능성은 있다. 컴퓨터 프로그램은 유기체 진화의 법칙과는 무관한 새로운 진화과정에서 만들어 졌다. 

 

역사의 다음 단계는 기술적, 유기적 영역뿐만 아니라 인간의 의식과 정체성에도 근본적인 변형이 일어나리라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