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철학계의 거목인 김태길 전 서울대 교수가 타계하셨다. 김교수님의 강의를 딱 한번 들은 적이 있다. 대학 1학년 때 교양과목이었던 철학시간이었다. 철학시간 교수님은 유달영교수님이었다. 원래 전공인 잔디학보다는 수필가로 더 잘려져 있는 분이다. 이분의 강의 방식은 외부에서 저명한 철학자들을 초대하여 하는 강의였다. 다양한 분들의 다양한 철학단편을 듣게 되어 즐겁게 들었다.
어느날 초대된 분이 김태길 교수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철학분야는 저명한 분이라도 잘 모른다. 그분이 소개되었을 때 처음 알게 되었다. 강의가 시작되었다. 그때가 봄날의 중간으로 생각된다. 밖은 화사하고 햇살은 따뜻하고 강의는 조용했다. 노곤한 날씨에 여기저기 학생들의 고개가 끄덕여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분위기를 눈치채신 교수님께서 느닷없이 질문을 하셨다. '여러분이 깨어있습니까? 꿈을 꾸고 있습니까?' 느닷없는 질문에 모두가 잠에서 깨어나 어리둥절해 있었다. '여러분은 깨어 있다고 생각하실텐데 그걸 어떻게 증명하겠습니까?' 헉! 그 말씀에 뭔가 충격적으로 집히는 게 있었다. 일순간 내 지식체계에 혼란이 왔다. 내가 받아들인 인식들은 배움으로 전수된 지식으로 연결되어져 살아왔다. 나는 한번도 왜? 란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다. 회의한 적도 없다. 그분의 말씀이 이어졌다. "장주*는 어느날 나무 밑에서 나비가 된 꿈을 꾼 후 '내가 정녕 인간이 된 꿈을 꾸고 있는 나비인지? 인간인 내가 나비 꿈을 꾼건지 모르겠다.' 라고 말했다." 한다.
철학이란 자명한 사실에 왜? 란 의문을 갖는 것이다. 그분은 짧은 시간에 내게 큰 깨우침과 철학의 묘미를 주신 분이다. 인자하신 얼굴에 시간 내내 흐르는 그의 인간중심의 인본주의 철학은 내 마음을 훈훈하게 했다. 그리곤 내 생활의 좌표가 되었다. 그래서 그분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존경해 왔다.
그분께서 영면에 드셨다. 명복을 빕니다.
* 장자'의 <제물론편>에 나오는 이야기로 보통 호접지몽(胡蝶之夢) 이라 한다.
장자가 어느날 꿈에서 나비가 되어 꽃들 사이를 즐겁게 날아다녔다. 문득 깨어 보니 자기는 분명 장주였다. 대체 장주인 자기가 꿈속에 나비가 된 것인지, 아니면 나비가 꿈에 장주가 된 것인지를 구분할 수 없었다. 꿈이 현실인지 현실이 꿈인지, 도대체 그 사이에 어떤 구별이 있는 것인가? 장주가 곧 나비이고, 나비가 곧 장주라는 경지, 즉 물아의 구별이 없는 만물일체의 절대경지에서 보면 장주도 나비도, 꿈도 현실도 구별이 없다. 다만 보이는 것은 만물의 변화에 불과할 뿐인 것이다. 이처럼 피아(彼我)의 구별을 잊는 것, 또는 물아일체의 경지를 비유해 호접지몽 이라 한다. 오늘날에는 인생의 덧없음을 비유해서 쓰이기도 한다.
'FEEL >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명태 (0) | 2009.06.26 |
---|---|
석사 경비라.. (0) | 2009.06.24 |
꾸겨 넣은 지식들, 거짓 지식들 (0) | 2009.01.27 |
준법투쟁이 아니라 태업이 맞다. (0) | 2008.12.17 |
變動天下 (0) | 2008.10.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