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령 양떼목장에 이르니 목장이 안개에 덮여있다. 산 아래 도시는 맑은데 목장은 산중이라 그런가 안개가 심하다. 그래도 운치도 있고 보는 데는 지장이 없다. 맑은 초여름 날씨라 반팔을 입었더니 싸늘하다. 팔에 소름이 돋을 정도다.
목장 중턱 초원에 방목중인 양떼가 있었다. 일부는 초원 한가운데서 풀을 뜯고 있었고 일부는 울타리에서 사람들이 주는 풀을 먹는다. 털을 쓰다듬으니 마치 모직 카펫 느낌이 난다. 어디를 만져도 그냥 가만히 있는다. 풀을 입에 갔다 대면 그제서야 입을 오물거리며 먹는다. 무엇을 바라봐도 생각할 시간을 갖는지 한참을 그대로 있다. 뛰거나 달리는 놈도 없다. 거친 어린애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귀찮게 굴어도 그 녀석들에겐 남에 일이다. 이럴 수가? 이렇게 순할 수가! 이렇게 평온할 수가!
양떼 방목시기가 5월 20일 이후이고 목장 철쭉무리가 오월말에 만개한다 하여 적당하게 방문 날짜를 잡았다. 그런데 철쭉은 이미 지고 늦은 한두 그루만 피어 있었다. 올해는 이상기온이 심해 꽃들의 개화시기가 들숙날숙이라더니 그런가 보다. 산등성이에 있는 풍력발전기, 멀리 동해 바다도 보인다 했는데 안개가 걷힌 생각이 없다. 내려와 오대산 월정사로 갔다.
오대산 월정사는 아들이 세 살 때인 1990년 여름 휴가로 왔다. 오대산 월정사, 상원사, 적멸보궁, 오대산 계곡, 경포대를 돌았다. 월정사 가자면 큰 다리가 있다. 다리 밑으로 큰 하천이 있고 흐름을 막아 맑은 물을 저유하고 있었다. 깊어 보인다. 저유지 군데 군데에는 한두 그루의 큰 나무가 있는 섬들이 있다. 아름답다. 월정사에 이르니 내 기억과 매치되는 장소는 한 군데도 없었다. 월정사 구층석탑이 없었다면 와 봤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아마 회의를 느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