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가 세상에 제공하는 이미지는 백미러로 보이는 이미지일뿐 미래를 예측하지는 않는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를 쓴 목적은 역사의 일반화, 즉 과거를 압축하고 추출하는 행위였다. 후견인이 역사를 빨리 터득할 수 있도록 개인의 경험을 넓힐 수 있는 역사적 경험의 압축이었다.
과거를 공부하는 것은 미래를 예측하는 확실한 가이드가 아니다. 그것의 목적은 경험을 확대함으로써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기술, 힘, 지혜를 증가시킬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역사는 획득한 능력을 세대에서 세대로 전승함으로써 이루어지는 진보이기도 하다.
역사 진실에 대해 서로 다른 의견이 있다는 것을 배우는 것도 성장 과정의 일부이며, 스스로 어느 것을 선택할 지를 결정해야 한다. 시대를 넘어 일반화를 유지시켜주는 것이 추상화다. 역사가는 있는 그대로의 묘사와 추상적인 묘사 사이의 균형을 찾아야 한다.
수백만 명이 수천 년이 넘는 세월동안 루비콘 강을 건넜다. 역사가는 스스로 무엇을 서술하고 싶은지를 결정한다.
영국 해안선의 길이는 얼마인가? 미터로 재느냐 마이크론으로 재느냐에 따라 달라지므로 정답은 '알 수 없다'이다. 영국은 어떻게 보는냐에 따라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하지 않는다. 일정치 않은 것은 채택한 측정의 방법일 뿐이다.
어떤 지도도 그 공간의 모든 정보를 제공해 주지는 않지만 이동하는데 필요한 만큼의 정보는 줄 것이고, 일반적으로 그 정도면 충분하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는 지도 그리기이다.
역사가는 직접 목격하지 못한 사건을 재구성해야 하는 경찰서장과 비슷한 곤경에 빠져있다. 역사가는 문헌, 유물, 기억 등 현존하는 구조들을 출발점으로 하여 그것들을 만들어낸 과정을 추론한다.
트리케라톱은 엄청난 크기, 거친 피부, 빳빳하게 세운 무기, 공격적인 자세 등 아무도 감히 대적할 마음을 품지 못할 정도의 외형이었지만 보이지않는 소화기, 순환기, 호흡기 모두는 서서히 쇠퇴하고 있었고 결국 작동을 멈쳐버렸다. 멋진 허우대가 어떤 동물의 생존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역사가에게 특정 변수를 신성시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호 연결성이다.
고전 자연과학은 모든 현상이 선형적이고 결정적이며 예측 가능하다고 여겼지만, 이 세상은 어떤 것은 예측 가능하지만 어떤 것은 그렇지 못하며, 규칙성이 있긴 하나 불규칙성과 함께 존재하고, 단순성과 복잡성이 공존한다. 동일한 시스템이라도 단순성과 복잡성이 동시에 발생할 수 있다. 이와같이 역사가의 방법론은 자연과학의 방법론에 가깝다.
역사적 문헌이 완벽하게 남아 있는 것도 아니고, 모든 사건이 다 문헌에 기록되는 것도 아니며, 문헌기록자의 기억력도 그 신빙성이 의심스럽다. 거기에 그가 모든 관점을 커버하며 사건의 전부를 목격했을 리는 만무하다. 따라서 후세 역사가는 실제 발생한 전체 스토리를 얻을 수 없다.
도덕적 심판은 역사가가 피해 갈 수 없는 작업이다. 역사가가 자기 시대의 규범으로 인물을 평가하되, 그 평가를 인물이나 인물 당대의 규범과 명시적으로 구별해 주어야 한다. 역사가가 과거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두가지 각도의 시각이 모두 필요하다.
역사는 사실을 대충 모사하는데 불과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묘사는 사실이 되어버린다. 과거를 억압하는 역사가는 그와 동시에 과거를 해방시킨다. 즉, 역사는 특정한 묘사에 갇히지만 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역사는 시간과 공간, 규모를 불문하고 더 넓은 시야를 위한 토대다. 따라서 올바른 생태 균형이 건강한 숲과 지구를 위한 전제 조건이듯, 집단적 역사의식도 건강하고 균형잡힌 사회를 위한 전제 조건일 것이다.
'FEEL >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치팅컬쳐 - 거짓과 편법을 부추기는 문화 (2004) / 데이비드 켈러한 저 / 김미경 역 (0) | 2024.06.07 |
---|---|
비열한 시장과 도마뱀의 뇌 (2005) / 테리 번햄 저 / 서은숙 역 (0) | 2024.05.16 |
에브리맨 (2006) / 필립 로스 저 / 정영목 역 (0) | 2024.03.15 |
파친코 (2017) / 이민진 저 / 신승미 역 (1) | 2024.03.07 |
화두 (1994) / 최인훈 저 (1) | 2024.0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