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7년 메이지 유신으로 막부에서 왕정으로 복귀한 일본은 1873년 서구 순방을 통해 비스마르크로 부터 ‘국제법과 정의는 국가관계에서 힘의 논리보다 우선할 수 없다.’ 는 연설을 듣고는 충격을 받는다. 강대국은 이롭다고 생각되면 국제법을 원용하나 불리하면 무력에 의지한다. 국제법이란 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강자의 논리일 뿐이다. 명치정부는 이를 국가정책에 지향해야할 게시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서구 순방을 통해 창조보다는 모방과 개선을 추구해야 함을 자각하게 되었다. 명치 정부의 탈아론은 아시아적 후진성이라는 늪에서 헤어 나지 못하는 중국, 조선과의 인연을 끊어 버리고 서구적 신국가로 출발하여 아시아를 서구 열강이 취급하고 있는 방식대로 대하자는 주장이다. 오늘날의 일본 문화는 중국 문명 성격으로는 설명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