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EL/읽기

일본은 있다 (1994) / 서현섭 저

felixwoo 2021. 2. 23. 13:09

1867년 메이지 유신으로 막부에서 왕정으로 복귀한 일본은 1873년 서구 순방을 통해 비스마르크로 부터 ‘국제법과 정의는 국가관계에서 힘의 논리보다 우선할 수 없다.’ 는 연설을 듣고는 충격을 받는다. 강대국은 이롭다고 생각되면 국제법을 원용하나 불리하면 무력에 의지한다. 국제법이란 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강자의 논리일 뿐이다. 명치정부는 이를 국가정책에 지향해야할 게시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서구 순방을 통해 창조보다는 모방과 개선을 추구해야 함을 자각하게 되었다.

 

명치 정부의 탈아론은 아시아적 후진성이라는 늪에서 헤어 나지 못하는 중국, 조선과의 인연을 끊어 버리고 서구적 신국가로 출발하여 아시아를 서구 열강이 취급하고 있는 방식대로 대하자는 주장이다.

 

오늘날의 일본 문화는 중국 문명 성격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그들은 오히려 근대 유럽 과학기술문명의 영향 하에 성장한 것처럼 보인다. (토인비도 중국문명과 일본문명을 구분하였다)

 

일본은 의식주와 지식, 종교에 대해서는 개방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인간 관계에 있어서는 대단히 폐쇄적인 경향이 있다. 일본의 유통구조가 복잡하여 세계적 제품도 일본 시장 진출을 제대로 못하는 것도 인간관계의 폐쇄성에 있다.

 

조선과 일본은 쇄국이라는 같은 간판을 내걸고 있었지만 일본은 서양의 신선한 바람이 스며들어 올 수 있는 데지마라는 틈바구니를 마련했고 조선은 일편단심 중화사상에 철저했다.

 

결혼식은 신도 의식에 따르고 일상적인 생활은 유교적 규범에 따르며 장례식은 불교식으로 치르는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인의 도덕원리는 ‘신 앞의 양심’이 아니라 ‘타인 앞에서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으려는 자세’라고 한다.

 

조선시대를 통틀어 일본으로부터 도입한 것이라고는 고추, 담배, 고구마, 화투 네 가지뿐이었다고 한다. 일본에는 정녕 배울 만한 점이 없었을까, 그들은 늘 야만적이기만 했던가.

 

중국이 1842년 남경조약 체결에 따라 개국되었고 일본이 1854년 미국과의 화친조약으로 개국되었다. 조선은 1876년 일본에 의해 강화도 조약으로 개국하였다. (일찍 개국하였다고 반드시 앞서나간 것은 아니었다. 일본은 종교이외의 모든 걸 받아들여 문명개화가 빨랐지만, 취사선택한 중국은 개화가 늦었다)

 

무사는 충성과 책임을 위해서는 항상 할복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며 대의명분을 위해서는 자기의 삶을 언제라도 팽개치도록 교육받는다, 이러한 극단적 정신이 국가와 회사에 대한 충성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그 힘은 무서울 정도다.

 

조선 개화파들의 좌절은 민중의 이해나 지지 기반 없이 일본이라는 외세의 지원 하에 급격한 개혁을 추진한 데 그 원인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일반인의 눈에는 개화파는 곧 친일파와 동의어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일본 사회에서는 옛날부터 천하 제일을 추구하는 직인정신, 장인정신이 존중되어 왔다. 임진왜란 때 포로로 잡혀간 도공의 가문이 400년 가까이 옹기장이의 가업을 계승해 왔음은 우리에게 불가사의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경제대국의 간판 아래 살고 있는 국민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윤택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전후의 경제부흥 과정을 통해 생산 본위, 수출주도형의 경제에만 치중해 온 결과이다. 1992년부터 ‘생활대국’이라는 경제대국에 걸 맞는 풍요로움과 여유를 실감할 수 있는 나라를 구축하기 위해 사회 기반의 정비와 노동시간의 단축 등 구체적 시책을 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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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25년만에 재독하였다. 그 당시 나는 다른 개가 짖으면 따라 짖기도 했다. 

 

일본은 중국과 더불어 싫으나 좋으나 지정학적으로 이웃나라로서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할 숙명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과 깊이를 넓혀가면서 진정한 의미의 좋은 이웃 관계를 발전시켜 가도록 함께 노력하는 방법 이외에 별다른 수가 없다고 본다.

 

우리는 오랜 기간 우리 문화를 일본한테 전해줬다는 자부심이 있지만, 일본은 우리를 단순히 중국문명의 전래자로  여긴다. 그리고 임진왜란과 근대 식민지배를 하면서 우리를 한수 아래로 인식하고 있다.

 

일본은 한반도의 1.6배 크기에 인구도 1억명이 넘으며 지금은 세계 경제대국이다. 중국은 화이사상에 젖어 남의 사정은 이해하려 않고 힘만 믿고 보복하려 든다. 이 틈에 껴있는 우리나라로서는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 세심한 전략이 필요하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힘 앞에 일본과 유연한 관계가 필요해 보인다. 맘에 들지는 않더라도 과거보다는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우선시하면 어떨까? 친해질수록 이해수준도 높아지는 게 인간사 아닌가? 미래로 과거를 푼다는 심정으로. . .  세상에 일본만 있는 건 아니다. 내겐 중국이 더 염려스러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