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읽을까 내 책꽂이를 가끔 살펴본다. 책꽂이엔 내가 본 책도 있지만 처가 보았던 심지어는 시집 가기 전 막내누나가 보았던 책도 있다. '생의 한가운데' 가 눈에 띈다. 처가 읽었던 소설이다. 한때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었다. 나는 읽어 본 적이 없었다. 읽으려니 누렇게 변한 종이와 선명하지 못한 활자로 가독성이 떨어진다. 새 책을 주문했다. 초반부를 읽다 그만둔 표식이 있다. 이어갈 만한 감흥이 일어나지 않았었다. 그게 몇 해 전이다.
읽을 시기를 놓친 고전이란 책을 가끔 손에 든다. 그 중 몇 개는 중간에 포기했으나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은 끝까지 읽었다. 별 감흥이 오지 않았다. 공감을 불러 일으키기엔 시간이 많이 흘렀다. 발표 당시엔 충격적이고 앞선 얘기였겠지만 지금은 평범한 얘기이기도 하다.
다시 '생의 한가운데'를 들었다. 이번엔 끝까지 완독했다. 생의 한순간까지도 완벽하게 사랑한 여자라 하지만 내 보기엔 즉흥적이고 기분 내키는 대로 산 여자다. 자기에 일편단심이고 충실한 슈타인 박사에겐 자기 감정에 충실하여 언제나 거리를 둔다. 하지만 나쁘게 말한다면 제 뜻대로 가능한 먹이는 놔두고 다른 먹이감을 찾는 얍삽한 여자다. 물론 객관적인 면에서 이해가는 면은 있다. 슈타인이 젊은 여주인공(니나)에겐 20 여살 많고 행동보다는 생각이 많은 중년이니 그의 뜨드미지근한 사랑에 지칠 수도 있을 것이다.
자유에의 강렬한 의지로 자기만의 길을 걸어간 여자라 하지만 슈타인의 보이지 않는 손길이 어루만져지지 않았다면 그녀는 꽃도 피기 전에 졌을 것이다. 더욱 실망스러운 것은 그녀가 선택한 결혼이란 게 덫에 걸린 먹이감 처럼 분위기에 휩싸여 이루어진 어처구니 없이 싱거운 결과였다. 영혼의 해후나 순수한 공감의 순간을 서로 가질 수 있는 사람끼리는 결코 결혼할 수 없고, 결혼의 전제는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려고 했을까? 그녀의 본래적인 성실성은 연애에 있어서도 수많은 남성과의 순간에 불과한 '만남' 밖에는 허용하지 않는다. 자유롭다 거리낌이 없다고 보기엔 좋아 보이지 않는 행동이 있다. 자유로운 성이 그렇다. 인간의 소유욕에서 일부일처제가 나왔다는 주장도 있다. 인간이 처놓은 하나의 경계라면 경계다. 하나 모든 파괴는 유용하지만 회복할 수 없는 파괴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본다. 파괴는 더 큰 창조가 있을 때 의미있다. 그러나 막상 결정을 내릴 때면 큰 창조가 될지 않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소설감이 되는지 모르겠다.
(이하 교보문고 서평)
이 책은 주인공 니나 부슈만이 자신의 생일날 언니를 불러 함께 며칠을 보내면서 나누는 대화와 니나에게 보내져 온 슈타인 박사의 니나를 향한 일관된 사랑의 마음을 담은 편지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다. 사랑, 결혼, 임신과 곧 이은 이혼의 파국, 그러나 그러한 삶의 질곡에도 불구하고 한 여자로서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단 한 번도 외부와 타협하지 않았던 니나 부슈만. 베를린 국민 재판소 사건으로 연루되어 옥고를 치루기도 한 작가 루이제 린저 자신의 자전적인 요소가 숨어 있는 듯 소설 속의 니나 부슈만도 반나치파에 가담하여 위험을 자초하기도 하는 등 생에 대한 끊이지 않는 집념과 신념을 보여주고 있다.
생의 한순간까지도 완벽하게 사랑한 여자, 자유에의 강렬한 의지로 자기만의 길을 걸어간 여자, 기만과 타협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 니나 부슈만. 그녀의 고집스러움까지도 사랑한 슈타인 박사의 일기를 통해 전달되는 니나 부슈만의 의식세계는 고통을 넘어서는 생에 대한 완벽한 긍정과 집중을 보여주고 있으며 루이제 린저가 창조해낸 니나 부슈만이라는 인물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잊혀지지 않는 영원한 삶의 모델이 될 것이다. 생을 사는 하나의 방법, 이렇게 한 여자는 걸어갔다.
"영혼의 해후나 순수한 공감의 순간을 서로 가질 수 있는 사람끼리는 결코 결혼할 수 없고, 결혼의 전제는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린저가 말하려고 한 것 같다. 불가해한 상대방의 본질에 대한 격렬한 지적 호기심, 어깨를 누른 강한 손길, 우연의 섭리, 그리고 누구의 명령을 받고 착하게 복종하고 싶은 여자의 본능, 안정에의 동경, 이러한 여러 요소가 전제로 되어서 마치 토끼가 덫에 잡히듯 서서히 자연스럽게 꽉 잡히고 마는 과정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 전혜린
생의 한가운데(1950) 루이제 린저 지음/전혜린 옮김 문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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