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시작은 카메라가 타이어 자국이 선명한 어두운 도로를 따라가며 시작된다.
‘...이 세상은 인종간에 사람간에 끝임없이 부딪치고 있다.’ 라는 내래이션과 함께.
여기저기 여기되어 공간을 떠도는 원자들. 작으마한 충격에 한 원자가 과잉 행동을 하여 다른 원자를 치면 연달아 치고 받는 아수라장이 된다. 에너지는 증폭되어 큰 현상을 일으킨다. 그러다 서서히 에너지를 잃게되면 다시 안정상태에 이른다. 포켓볼 게임도 그렇다. 원 쿠션, 두 쿠션, 쓰리 쿠션 그 이상의 복잡도 가능하다. 자연이란 그렇다.
백인, 흑인, 멕시코인, 이란인, 히스패닉 그리고 한국인. 서로 무관없는 듯 하지만 개인, 사회, 나라, 지구 공동체로 삶의 공간과 시간이 직간접으로 연결되어져 있다. 살다보면 어느 순간 의도하지 않았고 뜻하지도 않았던 결과에 낙담하거나 절망하기도 한다. 의도했더라도 후회 막심한 일들. 되돌아 갈수만 있다면. 그러나 되돌아 갈수는 없다. 삶이란 늘상 그렇다.
부처의 말씀이 떠올랐다. 왜 일까? ‘삼라만상은 다 연결 되어져 있다. 네가 나고 내가 너다. 죽어도 다시 태어나고 태어나면 다시 죽는다. 삶은 윤회의 굴레바퀴다.’ 깨달은 분의 형의상학적 말씀 정도로 받아들였다. 이해되지도 마음에 와 닿지도 않았다. 이 영화 보고나면 이 말씀의 뜻을 얼핏 깨달게 한다.
원인이 있기에 결과가 있다. 이것이 있기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멸하므로 저것이 멸한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연결되어져 있다. 그러기에 너와 내가 따로 구별되지 않고 모두 하나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신 후 설파한 연기론이다. 성경에서는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가 하느님의 말씀을 어기고 '선악과' 를 따먹은 이후 후손인 인류는 모두가 죄인이라 한다. 원죄론이다. 무엇이든 사람은 홀로 사는게 아니라 공동체임을 얘기한다.
우리는 알든 모르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는다. 때론 강한 충돌도 하고 부드러운 접촉도 한다. 영원한 악인도 없고 절대적인 선인도 없다. 깊고 끝없는 절망 속에서 연꽃은 핀다. 어두움 속에서 희망은 나타난다. ‘어딘가에 장미가 피어 있기에 이 지구는 아름답다.’ 는 어린 왕자의 말이 생각나다.
예전에 보았던 영화 '바벨'을 연상케 한다. 바벨보다 앞서 나왔습에도 시나리오가 치밀하고 감동이 진하다.
(이하 다음 영화 스토리 인용) -------------------
LA 교외의 한 도로에서 시체가 발견된다. 현장에 도착한 수사관 그레이엄(돈 치들)의 표정이
당혹과 슬픔으로 일그러지는 순간, 이야기는 36시간 전, 15명의 삶으로 돌아간다.
백인 부부 릭과 진 - 지방검사 릭(브랜든 프레이져)과 그의 아내 진(산드라 블록)이 두 흑인 청년에게 차를 강탈 당한 밤, 아내 진은 주위 모든 것에 화가 난다. 집문 열쇠를 수리하러 온 멕시칸 남자 대니얼은 의심스럽고 가정부에겐 짜증이 난다. 그러나 그녀는 지금 모르고 있다. 자신이 정치적 성공에 몰두한 남편 때문에 외로우며, 36시간 후 결코 예상하지 못했던 기적을 만난다는 것을...
흑인 부부 카메론과 크리스틴 - 같은 시간, 흑인이자 방송국 PD인 카메론(테렌스 하워드)과 아내 크리스틴(탠디 뉴튼)은 지방검사 릭의 강탈당한 차와 같은 차종이라는 이유로 백인 경찰 라이언과 핸슨에게 검문을 당한다. 라이언은 여자에게 몸수색을 이유로 성적 모욕을 준다. 수치를 당한 아내는 남편을 비난한다. 그러나 남편은 그 사건이 자신의 지위에 위협을 줄까 두렵다. 아직 그는 자신이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
백인 경찰 라이언과 핸슨 - 라이언(맷 딜런)은 아버지의 병 수발이 힘들기만 하다. 그의 폭력은 병든 아버지로부터 받는 아픔에 대한 화풀이일 뿐이지만, 그는 아직 자신이 수치심을 안겨준 흑인 여자(크리스틴)와의 운명적 만남을 알지 못한다. 또한, 핸슨(라이언 필립)은 라이언의 행동에 분노하지만 36시간 후, 그 역시 편견에 사로잡힌 엄청난 충돌이 있음을 감히 상상도 못한다.
이란인 파라드와 멕시칸 대니얼 - 페르시아계 이민자인 파라드는 자신의 가게를 지키기 위해 총을 사고 열쇠를 고치지만, 자신이 무시당하고 있다고 느낀다. 도둑이 가게에 침입한 날, 그것이 열쇠 수리공 멕시칸 대니얼 때문이라고 생각한 파라드는 결국, 대니얼의 어린 딸을 향해 총을 쏘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오해는 기적과 구원을 가져온다.
흑인형사 그레이엄 - 살인사건의 현장, 그가 보고 있는 시체는 자신의 동생이다. 백인사회에서 성공을 위해 가족으로부터 스스로 소외를 선택한 그이지만, 지금 그 앞엔 동생의 시체와 함께 ‘동생을 죽인 살인자는 너’ 라는 어머니의 비난만 남아있다.
흑인청년 피터와 앤쏘니 - 36시간 전, 지방검사 릭의 차를 강탈했던 피터와 앤쏘니. 피터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만남 끝에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당신이 절대 상상할 수 없었던 충돌을 맞이한다.
LA. 결말을 예측할 수 없는 36시간을 향해 그들은 서로 교차하고 충돌하며 달려가고 있다.
<크래쉬>는 미친 듯 덩치를 키운 대도시 속에서, 스쳐 지나는 사람들과 그들이 감추고 있는 상처를 아픈 시선으로 그린다. 그러나 그들은 왜 자신이 아파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 그들의 파괴적인 연쇄 충돌의 결말 또한 알지 못한다. 과연 이 영화 <크래쉬>가 관객의 시선을 놓치지 않는 힘, 그리고 이 작품에 쏟아진 그토록 수많은 찬사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그들은 죽음 직전의 사고현장에서, 몸을 가눌 수 없는 고통의 극한에서, 아픔의 밑바닥에 이르러서야 깨닫기 시작한다. 당신과 친밀하고 싶고, 당신과 소통하고 싶고, 당신을 이해하고, 당신을 받아들이고 싶었다는 것을! 충돌(Crash)이란 접촉(Touch)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며, ‘당신에 대한 그리움’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눈덩이처럼 불어난 상처 한가운데에서 그들은 스스로 묻게 된다. "어떻게 하면 당신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해야 당신에게 다가갈 수 있습니까?...”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Stranger)이 서로에 대해 느끼는 공포가 그들 사이에 가로 놓여 있다. 그 공포와 단절, 몰이해가 한 젊은 청년의 죽음을 결정하는 충격적 반전을, 영화는 침착한 시선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폴 해기스는 화해의 손길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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