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EL/읽기

나는 걷는다 / 베르나르 올리비에 저 / 임수현 역

felixwoo 2011. 2. 24. 13:55

 

이스탐불에서 시안까지 느림, 비움, 침묵의 1099일 란 부제가 있다. 읽게 된 동기는 그의 최근 저서 ‘떠나든 머물든’ 을 읽고 나서였다. 은퇴 후 온화한 노후를 즐기며 삭으러 들기를 거부하고 그는 걷기를 선택했다. 산티아고 데콤포스델라로 향하는 2,325 킬로미터를 걸었다. 걸으며 인생을 반추해보고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했다. 걷기를 끝내며 걷기만이 자신을 찾는 길임을 확인했고 실크로드 12,000 킬로미터를 다음 목표로 정했다.

 

1권 아나톨리아 횡단 

 

전체 여정은 3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1권은 1999년 이스탐불에서 도우바야지트까지 터키의 서쪽에서 동쪽으로 1,200 킬로미터의 아나톨리아를 횡단하며 쓴 이야기다. 그는 튼튼한 다리를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며 무척 겸손해했다. 하도 겸손하여 그런지 알았다. 운동삼아 매일 5 킬로미터를 한 시간정도 걷는 나도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1권을 읽고 결론부터 말하면 오산임을 알았다.

 

먼 도보여행에 꼭 필요한 필수품을 줄이고 줄여도, 배낭 무게가 15 킬로그램이라 했다. 익숙하지 않은 신발, 배낭으로 인해 발과 어깨, 가슴이 헐고 고름이 맺고 아물기를 보름 동안 반복한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 무거운 배낭을 메고 땀이 범벅이 되어 산악지대를 오르내리기. 늑대 같은 사나운 캉갈 (양치기 개), 인적이 없는 곳에서의 강도, 미치광이 주민, 안하무인의 테러리스트 진압군인들, 반골기질의 배타적인 쿠르트족. 불결한 호텔과 식사, 안전하지 못한 식수, 피할 때 없이 쏟아지는 눈비바람, 화물차들이 위협을 주는 도로에서 걷기. 정치, 자연, 사회 특성이 주는 위험이 도처에 산재해 있었다. 언어소통의 어려움으로 고독을 느끼고 반복되는 똑 같은 질문에 일일이 대답해야 괴로움도 있다. 도시는 끊임없이 바가지를 씌우려 한다. 튼튼한 다리로 만으로는 할 수 없는 고행과 인내의 길이었다.

 

즐거운 일도 많다. 이슬람 전통이 살아있는 시골은 그를 손님으로 여기고 부담스러울 정도로 배려를 한다. 좋은 음식을 대접하고 훌륭한 잠자리를 마련해 준다. 가족들과 즐거운 대화도 하고 사진도 찍는다. 만나고 헤어지는 짧은 여정 속에서 깊어진 정으로 가슴이 아픈 적도 많다. 그들의 소박한 생각 단순한 생활. 은퇴 할 정도로 많이 살고 맣이 만나왔지만 이런 사람들은 만난 적도 본 적도 없다. 세상이 넓다는 것을 몸소 체험한다.

 

느림, 비움, 침묵의 걷기. 걷다가 불가피하게 차를 타는 적도 있지만 다음날에 그곳에서 다시 걷기를 시작한다. 도보여행이라는 원칙을 결벽증처럼 지키니 느림은 지켜진다. 홀로 하는 여행이다. 제한적인 단어와 사전으로 소통한다. 기본적이고 최소한적인 의사소통만 하니 고독도 저절로 유지되었다. 하나 비움은 제일 하기 힘든 덕목이었다. 계획상으론 하루에 30-40 킬로미터를 걷기로 했다. 목표에 대한 욕심으로 하루 목표량을 오버하기 다반사다. 계획량의 초과는 몸의 균형을 깨고 다음날에 여정에 무리를 준다. 왜 걷는지? 왜 이리 고행을 하는지 이미 수백 차례한 고민을 또 하고 끝없이 회의를 하지만, 오버 페이스, 먹고 자는 곳 찾기, 위험상황 대처하는라 비움은 생각할 틈이 없다.

 

첫 해 목표치를 900 킬로미터를 남기고 이질로 피골상접하여 풀밭에 코를 박는다. 그리곤 고국으로 후송된다. 

 

2권 머나먼 사마르칸트

 

이란,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이슬람이 지배하는 나라, 막 공산주의에서 나온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나라들을 통과한다. 크던 작던 모든 권력이 텃세를 부리고 사익에만 관심이 있다. 모든 곳에서 시골사람들은 따뜻하다.  

 

3권 스텝에 부는 바람 

 

대부분이 중국 행로다. 그동안 거쳐온 이슬람 지역은 손님을 따뜻하게 맞이하는 풍습이 있어 낯선 사람과의 정다운 만남이 많았다. 그들은 먹여주고 재워줬다. 반면에 중국인은 외국인에 대해 배타적이거나 구경거리로서 관심의 대상이 된다. 그러기에 잠자리는 주로 텐트에서 자고 음식점에서 먹거리를 해결한다. 한자 언어는 감도 잡지 못하니 고독과 외로움은 더욱 배가 되었다. 저자도 서양인이기에 서양문화에 익숙한 탓이다. 동양인들이 같은 길을 간다면 중국이 더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매일매일 짧은 여정 속에서 떠난 이유를 내 자신에게 물었다. 무엇보다 시급히 알아야 할 것은 내가 어디에서 온 것인지 깨닫는 것이다. 나를 떠나게 부추긴 것은 우선 너무 오래도록 얌전히 생활하면서 억눌러온 모험에 대한 갈증이었다. 공부, 일, 가족, 아이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나는 유연하지만 질기고 부드러운 끈으로 온몸이 매여 있었다. 나는 습관과 평범한 일상과 안락함과 친한 친구들의 모임과 ‘8시 뉴스’와 기념일과 돈을 마저 지불해야 하는 집 등 모든 것을 끊어야 했다. … 그것이 첫 번째 이유다. 두 번째 이유는 아내 다니엘이 꿈에 그리던 여행을 실현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오랜 시간 동안 내 곁에 있었던 아내의 죽음으로 여행에 걸었던 희망이 단번에 날아가버렸다. 나를 버리고, 이 모든 요란한 옷을 벗고, 벌거벗어야 했다. 여행은 또한 죽음의 신이 휘두르는 거대한 낫이 생의 밧줄을 끊어버릴 때, 최후로 출발하는 법을 배울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

 

하나 그것이 아니었다. 후에 걷는 진정한 이유를 다시 말한다.  '어쨌든 나는 단 하나의 목표를 정했다. 내가 왜 이렇게 걸어야만 하는지를 이해하도록 애쓸 것. 그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나의 첫 번째 동기는 혼자인 나를 발견하고 싶다는 바람일 것이다. 그런 고독 속에서는 사회생활의 거짓과 탐욕은 줄어들고 내적인 진실함은 더욱 커지니까. 또한 세상의 관대한 신비로움 속에서 더욱 존재감을 느낄 수 있고, 기적적인 만남의 시간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 그러니 여행은 끝이 없어야만 하고, 삶 그 자체가 되어야 할 것이다. 여담처럼 잠시 삽입된 것이 아니라, 삶의 도정 속에서 아주 길게 지속되는…'

 

그리곤 이렇게 끝을 맺는다.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도는 통한다 했다. 득도 했나보다. '모든 것은 공하다.' 라는 부처 말씀과 일맥상통한다. 그렇다. 모든 것은 공하다. 

 

1권을 경의로움과 충격으로 재미있게 읽었다. 2,3권으로 갈수록 비슷한 내용의 반복으로 경의로움은 미약해지고 대신 그의 인내와 체력에 경탄을 금할 수 없게 된다. 실크로드는 역사상 동서문화가 교류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지금은 흔적도 없고 의미도 없는 사람의 기억에서 사라진 죽어버린 길이다. 단지 그의 인내를 실험하고 자기의 존재감을 확인하고픈 길뿐이었다. 그는 자기를 발견했을까? 그건 모르겠다. 하나 누구도 감히 해보지 못한 생각과 도전을 초인적인 의지로 해냈다. 그는 뒷방으로 물러나야 하는 상황을 극복했고 세상사람들과 소통하는데 성공했다. 세상을 위해 노인으로서 할만한 숭고한 일중의 하나를 찾는다. 그는 삶의 큰 전환점을 잘 극복했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