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 전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며 무심코 타일 속에 프린트된 무늬를 봤다. 구체적 상이 아닌 연한 농담으로 퍼지는 담배 연기 같았다. 어떻게 보면 투구를 쓴 멋진 장군 얼굴이고 어찌 보면 음화 비슷하게 보이기도 한다. (http://blog.daum.net/felixwoo/5478958) 뭔가를 구체적으로 그릴 순 없지만 추상 무늬 속에서 뭔가는 추출할 수 있다는 점이 추상을 그리는 모티브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작품을 감상할 때 제목을 보고 그림을 감상하던가 그림을 먼저 감상하고 제목을 본다. 제목은 그림을 압축한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목 때문에 작품이 어떤 틀에 제한되고 갇히기도 한다. 추상화의 제목은 무제, 작품(work) 등 추상적인 것이 대부분이다. 모든 걸 상상력에 맡긴다.
추상화에는 직관적인 상이 없다. 단지 감상하는 사람에 따라 이런 저런 상을 추정하고 난 다음 나름 스토리를 만들 수 있다. 보는 사람 맘에 달렸다. 추상의 힘이다. 그러기에 프레임에 길들여진 대부분 사람들에겐 불편하다. 쉽지 않은 일이다. 대중적인 인기가 없다.
산 이란 제목의 작품을 통해 유영국을 알게되었다. 삼각형 하나 또는 몇 개로 구성된 단순한 구성에 몇 개 안되는 색감(주로 붉은 색)이 그 당시 충격이었다. 유영국의 작품은 구성이 단순하고 색깔이 강렬하다. 단순함은 명상처럼 평안함과 차분함을 준다. 정적이다. 고요한 분위기에 강렬한 움직임으로 생명력을 불어 넣는 것이 색깔이다. 몇 안 되는 주종 색깔들로 단순하게 칠해져 이 또한 단순하고 정적이지만 붉음, 파랑, 노랑 등 삼원색의 강렬함과 보색 대비가 육중한 이들을 움직이게 한다. 지각을 움직이게 하는 육중하고 거대한 힘이 느껴진다. 정중동이요 동중정이다.
유영국은 20세기 초(1916년 생) 사람이다. 평생 추상 화가의 길을 걸었다. 한 때 작업 활동을 중지하고 배를 타거나, 양조장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가기도 한다. 그는 아내에게 말한다. 사람들은 자기작품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나마 한 세대가 지나면 알아봐 줄런가. 아내는 그림이 돈이 되리란 생각을 애당초 안 했단다. 그러다 그림이 팔리니 히안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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