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편가르기가 심화되는 경향을 보여 안타깝고 염려도 되던 차에 빌 게이츠가 2022년 여름 도서로 이 책을 추천했다. 우리 정치만 유독 양극화가 심한 줄 알았더니 우리와 정치 시스템이 비슷한 미국 정치도 마찬가지라는 게 약간은 위안이 되었다.
정치의 양극화는 국민을 극단적으로 분열시킨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양극화가 초래된 여러 요인중 사람들의 정체성이 가장 많이 영향을 준다. 정체성을 완화하기위해 오마바가 언급했듯 몇몇 특정 정체성에 함몰되지 말고 자신이 가진 다양한 정체성을 상기하는 게 바람직하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의 경우 보수적이지만 서울 사람, 합리적인 사람, 환경론자, 불교신자, 인본주의자 등 그 사람이 가진 여러 정체성들을 떠올리자. 이 중에는 태생적인 정체성도 있지만 본인만의 선택적인 정체성도 있으므로 진영을 떠나 정책에 따라 헤쳐 모이다 보면 극단성이 엷어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보수주의는 이데올로기이라기 보다는 집단 정체성이나 인간 본능에 가까워 정권 창출에 유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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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집단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는 거의 아무 것도 필요하지 않으며, 일단 집단 정체성이 형성되면 자연스럽게 다른 집단과 경쟁하고 있다고 가정하게 된다.
오늘날 정당들은 인종적, 종교적, 지리적, 문화적, 심리적 기준에 의해 첨예하게 나뉘어 있다. 이러한 목록에는 아주 많은 정체성들이 도사리고 있고, 그것들은 서로 교차하며 융합하고 있다.
양극화한 대중에게 호소하기 위해, 정치 기관들과 정치인들은 더 양극화를 자극하는 방식으로 행동한다. 우리가 우리의 목적을 위해 정치를 이용하는 것처럼, 정치 역시 자신의 목적을 위해 우리를 이용한다.
미국 정치판의 모든 사람이 정체성 정치를 한다. 정치인들이 ‘신이 미국을 축복하기를’이라는 말로 연설로 끝내는 것은, 그들이 실제로 신에 호소하기 때문이 아니라 미국인들이 공유하는 바위처럼 단단한 정체성에 호소하기 때문이다.
-어쩌다 민주단원은 진보주의자가, 공화당원은 보수주의자가 되었을까
1960 경에는 민주당과 공화당 사이에는 진정한 차이가 없고, 있을 수도 없었다. 정당들 사이의 모호함은 꽤 오래 이어졌다.
지난 50년 동안의 미국 정치는 우리는 특정 정당을 일관적으로 지지하게 되었다. 최근 수십년 동안 미국 정치에 일어난 변화는 정당들이 눈에 띄게 달라졌고, 이에 대한 대응으로 미국은 더 당파적으로 변했다는 점이다.
정당들의 의제가 다양해졌고, 정당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 역시 다양해졌다. 이 중심에는 인종이 있다.
-딕시크랫 딜레마
미국 남부는 민주당 텃밭이었지만, 한 때 진보주의의 비전이었던 부의 재분배와 계층 상승이 흑인에게까지 확대되자 민주당에 등을 돌렸다. 남부 민주당은 공화당과 타협할 이념적인 이유가 있었고, 전국 단위 민주당과는 타협해야 할 정치적 이유가 있었다.
민권법의 통과는 딕시크랫 (남부 민주당을 탈당한 극렬 보수주의자)의 종말을 예고했다. 딕시크랫의 종말은 남부 보수주의자들에게는 공화당에 합류할 수 있는 길을, 북부 진보주의자들에게는 민주당에 합류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이로 인해 정당들의 이념에 따라 스스로 분류되게 되었고, 더는 공화당 의원보다 보수적인 민주당 의원이나 민주당 의원보다 진보적인 공화당 의원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집단의 일원이 되고 집단이 번창하는 것은 생존을 의미했다. 집단에서 추방되거나, 자신이 속한 집단이 적에게 짓밟히는 것은 죽음을 의미했다.
열성 당원의 행동은 더 큰 선을 위해 정치 과정에 참여하는 사려 깊은 시민들의 행동이라기보다는 스포츠 팀원이 소속 팀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하는 행동과 유사하다. 정치는 팀 스포츠다. 같은 지역에 있다는 것 말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데도 그처럼 깊고 폭력적이기까지 한 충성심을 발휘한다.
유권자를 더 많이 끌어모으려면 자신이 얼마나 훌륭한 정치인인지 알리는 것으로 부족하고, 상대편 정치인이 얼마나 나쁜지에 촛점을 맞춰야 한다.
오바마는 정치적 정체성이 우리의 유일한 정체성은 아니다는 점을. 그리고 우리의 다른 정체성(학부모회 회원, 부모 등등)은 정치적 정체성보다 훨씬 덜 양극화되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는 우리의 정치적 정체성이 다른 정체성까지 양극화하고 있다.
양극화를 부추기는 데 정체성이 정책 이슈에 관한 입장보다 훨씬 강력하다는 점을 발견했다. 정치적 정체성은 증오를 위한 만만한 구실이다.
대법원은 정치색을 띠면 안되지만, 대법원이 직면하는 사건들은 종종 정치적이고, 대법관이 지명되고 임명되는 과정은 철저히 정치적이다.
- 인구 통계적 위협
변화가 우리를 보수적으로 만든다. 특히 백인이 과반수보다 적은 나라가 되고 있다는 사실은 백인들을 보수정인 정책과 공화당에 대한 더 많은 지지로 몰아간다는 것이다.
오바마가 대퉁령이 되는데 기여한 변화는 미국 문화의 어디에나 있다. 우리는 텔레비젼, 광고, 영화가 좀 더 짙은 색을 띠도록 노력하는 나라에서 살고 있다. 공화당원들은 동의하지 않지만, 대다수 미국인은 미국이 짙은 색으로 변해가는 것이 나라를 위해 좋은 일이라고 믿고 있다.
미국의 정치 지형은 백인일수록, 농촌일수록, 기독교인일수록 힘을 실어줘서, 이들 연합체가 인구 통계적으로 볼 때 예상되는 것보다 더 많은 정치적 힘을 갖게 한다.
누군가의 정체성을 활성화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그 정체성을 가진 이들을 협박하고, 그들이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을 가질 자격이 없다고 말하고, 그들이 가진 것을 빼앗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특권에 익숙해지면, 평등은 억업처럼 느껴진다.
- 좌파,우파를 뛰어넘은 미디어 분열
정치 미디어는 정치적 지분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뉴스는 민주주의를 개선하려는 개인들이 아니라 기분전환을 원하는 독자들, 특종을 노리는 기자들, 이익을 추구하는 소유주들에게서 나온다.
정치에 관심을 둔다는 것은 어느 한쪽을 선택한다는 의미다. 정치 미디어를 많이 소비할수록 상대편을 바라보는 시각이 더 비뚤어진다는 점은 아주 우려스러운 결과다.
진보적인 사람은 MSNBC를 보고, 보수적인 사람은 폭스 뉴스를 보고, 그저 사람들이 싸우는 걸 보고 싶은 사람은 CNN을 시청한다.
상대를 알면 마음이 바뀔까? 진보주의자들이 약간씩 폭스 뉴스를 보고, 반대로 보수주의자들도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상대가 생각했던 것보다 우리와 비슷하며, 상대의 지적 중 일부는 우리에게도 유익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라 생각되지만, 그러나 어느 쪽도 상대편의 의견에 노출된 후 자신의 견해를 누그러뜨리지 않았다.
현실에서 뉴스 가치성은 중요한 것, 새로운 것, 터무니 없는 것, 갈등을 빚어내는 것, 비밀스러운 것 혹은 흥미로운 것 들의 조합이다.
근래들어 대통령 선거 전략은 무당파, 결심이 서지 않는 유권자, 부동층을 설득하는 것보다는 지지 기반 동원을 강조하는 방양으로 바뀌었다.
어떻게 트럼프처럼 비정상적인 후보가 공화당 예비선거에서 승리하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투표에서 그렇게 큰 몫을 차지할 수 있었을까? 약한 정당과 강성 당원이 답이다. 양당 모두 대통령 후보 지명 절차를 당 예비선거로 넘겼다. 이는 후보자 선정 기준이 당 간부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느냐가 아니라 경선 투표에 참여하는 정당 지지자 극소수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느냐에 달렸음을 의미한다. 이로 인해 정당은 약해지고, 열성 당원들은 강해졌으며, 미국 정치 시스템은 선동가들에 더욱 취약해졌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극단적이고 시끄럽고 격렬하게 대립하는 사람에게 주목한다. 온건하고, 진정시키고, 사려 깊은 사람은 별로 주목받지 못한다.
개인 기부자가 정체성의 한 형태로 돈을 낸다면 기관 기부자는 투자의 형태로 돈을 낸다. 개인 기부자들은 양극화하고 있다. 기관 기부자들은 타락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 정치는 양극화한 사람들과 부유한 사람들이라는 두 부류의 사람들에게 끌려가고 있다.
트럼프는 대통령으로 취임한 후 산만하고 게으르며, 자신이 한 말을 지키는 데 관심이 없음을 스스로 증명했다. 그는 큰 피해를 줬지만, 많은 진보주의자가 우려한 것처럼 미국 중요 기관들을 통제하는 독재자로 부상하지는 않았다.
전 세계적으로 안정적인 민주주의 국가들 대다수는 입법권을 가진 쪽이 행정권을 획득하는 의원내각제 체제였다. 하지만 미국은 대통령제 민주주의 국가였다. 대통령은 의회와 별개로 선출되고 종종 의회와 의견 충돌을 겪는다.
미국의 정치시스템은 강한 지역 감각에 기반하고 있다. 하원은 435개 선거구의 회의를 여는 곳이다. 상원은 50개 주의 이익 균형을 맞추는 곳이다. 이것은 미국의 정치적 정체성이 국민이라는 추상적인 결합이 아니라 각자의 도시와 주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건국의 아버지들의 믿음을 반영한다. 하지만 점점 더 미 합중국이 되어 간다는 전국화의 핵심은 미국 건국자들의 가정을 뒤집는 것이다.
이념가들에게 협상가들의 거래는 항상 지저분해 보인다. 협상가들에게 이념가들은 자기 파괴적으로 보인다.
정치인의 우선순위는 1. 재선에 성공하기 2. 다수당 되기 3. 정책에 최대한 참여하기다.
- 민주당과 공화당의 차이
공화당은 압도적으로 백인 유권자들에 의존한다. 민주당은 진보주위적 백인, 아프리카계 미국인, 히스패니계, 아시아계 사람들로 구성된 연합체다. 공화당은 압도적으로 기독교인에 의존한다. 민주당은 진보주의적 기독교인과 비백인 기독교인, 유대인, 이슬람교도, 뉴에이지 음악 애호가, 무신론자, 불교신자 등의 연합체다.
자신을 보수라고 부르는 미국인의 비율은 오랫동안 자신을 진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비율을 압도했다. 이 격차는 최근 몇 년동안 좁혀졌지만, 2019년 기준으로 보수주의자들이 35% 대 26%로 앞서고 있다. 이것은 보수주의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집단 정체성이다.
- 양극화 관리하기 그리고 우리 자신 관리하기
양극화 속에서도 가능할 수 있도록 정치 시스템을 개혁하는 것이다. 시스템 개혁에는 세 가지 범주의 개혁이 있다. 내폭, 민주화, 균형이다. 정치적 재난으로 정부의 운영이 경색되지 않도록, 내폭성(폭탄에 견뎌내는 성실)을 가져야 한다.
투표가 쉬워야 한다. 투표하기가 어려워질수록 확실해지는 것은, 가장 양극화한 사람들만 투표장에 나타날 거라는 사실이다.
당파적인 대법원을 재건하고, 의회는 필리버스터에 의존하지 않기 위해 참여와 발언을 보장하는 규칙을 다시 세워야 한다. 한쪽이 다수를 차지한다고 해서 다른 한쪽이 발언권을 박탈당해서는 안된다. 필리버스터의 가장 큰 죄는 시스템을 고장낸다는 것이다.
모든 정치는 정체성에 영향을 받는다. 인간의 모든 인식은 정체성의 영향을 받고 정치는 인간 인식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상황에서 분리할 수 없다.
정체성이 휘두르는 힘을 통제할 수 없다 하더라도 그것을 이용할 수는 있다. 우리의 정체성은 여러가지다. 공화당원이나 민주당원은 정체성이다. 하지만 공정한 사람, 기독교인, 호기심 많은 사람, 뉴요커도 정체성이다. 자신을 가난한 사람, 동물 권리의 옹호자로 보는 것은 한 정당의 당원이 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정체성이다. 노력이 필요하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
우리는 국가 정치에 너무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 이를 바꾸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매우 적다. 반면 우리는 지방 정치에는 너무 적은 관심을 쏟고 있다. 주와 지방에서는 우리의 목소리가 훨씬 중요할 수 있다.
정해진 답을 찾는 것은 언제나 어리석은 일이다. 시스템을 돌아가게 하는 정답은 없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중에 최선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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