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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한우목장길 와 간월암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믄 풍광이다. 도로를 중심으로 계절에 따라 누런색에서 녹색 융단을 깐듯한 구릉지들이 나타나고, 구역 경계에는 벚꽃나무들이 줄 서있다. 벚꽃이 피는 시절에는 그 아름다움이 절정에 이른다. 과거에는 도로 양쪽으로 철조망이 쳐져있었고 도로에서 보는 풍경이 다였다. 얼마 전 이곳에 목장 구릉지를 가로지르는 산책로가 생겼다. 보기에도 시원스럽게 쭉 뻗었다. 완만한 데크 길을 올라가며 보이는 전망들이 새롭다. 멀리 빵빵하게 핀 목련 울타리가 누르스름한 초원 위에 흰색 악센트를 준다. 몽골의 초원과는 다르게 조밀하게 있는 구릉지들이 다정다감하다. 전망대는 시원스럽게 넓다. 전면으로는 농촌 풍경이지만 뒤로 돌아서면 조각 보자기를 펼쳐놓은 듯한 구릉지들이 아름답다. 벚꽃이 피었으면 별유천지였을텐데 아..

FEEL/국내 여행 2025.04.09

월든 (1854) / 헨리 데이빗 소로우 저 / 강승영 역 (1993)

1845년 소로우는 문명을 등지고 미국 동북부에 있는 월든 호수로 와서, 인습에 구애받지 않는 소박하고 원시적인 삶을 2년간 실험했다. 이 책은 모험기이기도 하지만 세밀하고 치밀한 자연묘사는 문학을 넘어 과학자의 경지를 엿보게 한다. 하지만 그보다는 인간 사회에 대한 통렬한 풍자서로서 참다운 인간의 길, 자유로운 인간의 길은 무엇인가를 끝없이 물으며 그 길을 찾아가는 소로우의 구도자적인 모습이 무척 좋다. 이하는 그가 한 말들이다. --- 내가 숲 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아보기 위해서였다. 다시 말해서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을 직면해 보려는 것이었으며, 인생이 가르치는 바를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했던 것이며,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헛된 삶을 살았구나 하고 ..

FEEL/읽기 2025.03.28

(안성) 금광호수

몇 번을 오간 안성이지만 이렇게 넓은 호수가 있을 줄이야. 하늘전망대에서 보면  브이자형 계곡 호수로서 생김새도 대단하다. 어둡고 거무튀튀한 산야가 허연 먼지 뒤집어 쓴 듯 뿌였지만 은은한 연두색이 완연하다. 봄의 전령이 대지에서 식물로, 식물에서 대기로 물과 에너지를 전하고 있다. 밑보다 위가 넓은 하늘전망대는 제법 높아 양쪽으로 넓은 호수를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다. 움직일 때는 모르지만 난간에 기대어 가만이 있으면 전망대가 흔들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왼쪽 호수에 혹처럼 나와있는 곳이 혜산정이다. 막상 혜산정에 가보니 전망대에서 볼 때처럼 멋있지도 낭만적이지도 않다. 호수 위로 조성된 데크길은 박두진 문학길이다. 호숫가 얕은 물엔 제법 많은 나무들이 잠겨 있고, 연두색 눈방울이 튀져나와 조만간 싹..

FEEL/국내 여행 2025.03.27

불멸의 화가 반 고흐 / 한가람미술관

고흐 작품은 언제 어디서 어떤 작품을 보던가 짜릿하다. 전도사를 하다 늦게 화가에 입문하여 평생 한점을 팔고 고생만 하다 37세에 자살했지만,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 받는 화가라는 스토리 때문일까? 그러나 스토리는 몰라도 작품 자체가 주는 시각적 충격이 더 크다. 네덜란드의 반 고흐 미술관과 고흐 작품에 있어서는 쌍벽을 이룬다는 크륄러 뮐러 미술관 소장 작품들이 시대별로 전시되어 있어 그의 예술세계가 어떻게 변하여 갔는지를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다. 입문시에 남긴 소묘는 배우는 학생의 그저 그런 습작들이다. 그럼에도 그의 독특한 굵은 필치와 강인한 구도가 간간히 보인다. 평범하던 유화 작품을 지나 쇠라식의 점묘법도 보이지만 결국 두텁게 칠하는 임페스토 기법에 선으로 역동성을 부여하는 그의 꿈틀거리는 그림..

ENJOY/미술 2025.03.14

(화성) 남양성모성지

모처럼 기온이 푸근하다. 같은 도시에 살면서 이곳에 오기까지 십수년이 걸렸다. 언제나 갈 수 있기에 안가지는, 고궁에 안가본 서울 사람들이 많은 이유와 같다고 할까. 카톨릭 성지답게 넓게 터잡아 겨울이라 삭막하기도 하련만 봄이 가까운 탓인지 그런대로 부드럽다. 먼저 촛불 공헌소가 사람들을 접한다. 공헌대 위의 뚫어진 공간사이로 낙엽으로 덮힌 경사지가 있고 평화로운 조각상이 보인다. 가면서 성상들도 보이고, 자기보다 몇 배 큰 십자가에 매어진 예수가 애처롭게 넘어져 있다. 길을 따라 둥그런 묵주들이 있어 마치 기도하는 마음으로 본당으로 향하게 한다, 본당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 마리오 보타의 작품이다. 붉은 벽돌로 쌓아올린 건물 가운데로 높다란 두개의 탑이 하늘로 솟아 있다. 언젠가 사진으로 본 대주..

FEEL/국내 여행 2025.02.28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 에곤 실레 / 국립중앙박물관

때는 바야흐로 욕망과 사치가 최고조에 달한 1차세계대전 직전의 오스트리아 비엔나. 그 속에서 꿈꾸던 예술가들의 흔적과 작품을 주제로 전시하였다. 빈에 소재한 레오폴드 미술관의 소장 작품들로 이곳은 사립이지만 에곤 실레 박물관으로 불리울 만큼 그의 작품을 독보적으로 많이 소장하고 있다 한다.  에곤 실레의 개성이 나타나기 전 피아노를 치는 삼촌 그림은 잘 그렸지만 누가 그렸는지 알기 힘들다. 모든 예술가들이 그렇듯 그런 과정을 거치며 서서히 자기 길을 만든다. 결국 균질한 공간은 없는 듯  얼룩덜룩하고, 유연하거나 매끈한 선이 없는 듯 삐뚤빼뚤한 그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했다. 볼륨감보다는 평면적 구성에 치중한 점은 클림트와 유사하다. 안타깝게도 그는 28세에 스페인 독감으로 요절하였다.  전시 작품 중 반..

ENJOY/미술 2025.02.12

풍래수면시 / 이강소 전 / 국립현대미술관

예전 서울옥션에서 보내주는 간행물에서 이강소를 알게 되었다. 물에서 노니는 오리를 그린 작품이었는데, 굵은 회색과 흰색 붓칠이 뒤섞인 단색 배경에 오리 형상을 선으로 대충 그린 반 추상이었다. 이강소의 예술 세계는 그게 다가 아니었다. 회화를 포함하여 조각, 사진, 설치 작품 등 장르를 가리지 않았고, 조각을 하면서 진흙을 빚지않고 던져서 작품을 만드는 등 기존 방법에도 구애받지 않았다. 상상을 초월하는 실험 정신과 자유를 구가한 작가였으며, 작가가 뭘 나타내려 했는가 보다는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의 지식과 경험에서 스스로 내용을 만들도록 하는 것을 추구했다고 한다. 부스마다 있는 그의 작품 설명은 현학적이어서 마치 철학서를 읽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미술은 시각 예술임이 분명하다면 언어가 배제된 작품 ..

ENJOY/미술 2025.02.01

슬픈 열대 (1955) / 레비-스트로스 저 / 박옥줄 역 (1998)

이 책은 레비 스트로스가 여행을 떠나게 된 과정, 브라질 아마존 지역의 부족들을 관찰한 내용, 아시아를 관찰한 내용, 유럽으로 돌아오는 내용을 다룬 기행문이다. 그는 1930년대의 관찰 경험을 20년이 지난 후에 저술한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그는 의미도 모르는 채 지구 끝까지 경험을 추구하러 넋을 잃고 다녔다고 했다. 그는 이 책에서 서양 문명, 원시 사회, 동양 문명의 공통점을 분석하고자 하며 문명과 야만이라는 이분법 사유를 거부한다. 그는 서양의 발전된 문명에도 그리고 원시부족들의 문명에도 동양의 문명에도 긍정 혹은 부정의 표현을 일절하지 않는다.  백인들은 원주민들이 동물이기를 바랐지만, 원주민들는 백인들이 신들은 아닐 거라고 의심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양편이 모두 마찬가지로 무지하였으나, 그래도..

FEEL/읽기 2025.01.20

(영종도) 인스파이어 리조트 와 메이드림 카페

삼십여 년 전에 라스베가스 LED 천정쇼를 보고는 감탄한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몇 년전 인스파이어 리조트 천정쇼가 생겼다. 중국 자본이 지었다는 호텔, 카지노, 공연장, 상가 등이 어울어져 리조트 규모가 대단했다. 중국 자본이 무섭다. 천정쇼의 하이라이트는 한시간마다 삼분씩 공연되는 고래쇼다. 천정과 수직 전광판에서 펼쳐지는 바닷속 풍경과 거친 파도 그리고 물 소용돌이는 가히 환상적이다. 가상 현실이지만 마치 바닷속에 있는 듯 실감나게 압도한다. 옛날 라스베가스 쇼만 해도 해상도가 낮아 기하학적인 조명쇼에 가까웠지만  지금은 기술 발전에 따라 현실감이 난다.    거기서 멀지않은 옛 마을에 교회를 개조하여 만든 카페가 있다. 외양은 십자가만 없는 멋없는 개신교 교회다. 하지만 들어서면 딴 세상이다..

FEEL/국내 여행 2025.0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