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JOY/행위

색계 (Lust Caution, 2007)

felixwoo 2007. 11. 15. 13:44

당신은 무엇에 물이 듭니까?

 

물듦·알아챔의 영화 ‘색, 계’
구름에 물들면 창공을 못봐

 

며칠 전 동료 기자들과 극장에 갔습니다. 리안 감독의 영화, (, )’를 봤죠. 놀랍더군요. 감독의 칼날은 여전히 날카롭게, 그리고 깊이 있게 관객의 폐부를 찌르더군요. 극장을 나서는 이들의 평은 ‘1010이었죠. 각자의 시선과 처지에서를 풀이하니까요. 물론 저도 그랬습니다.

 

저는 이 작품을물듦알아챔에 대한 영화라고 봅니다. ‘이 뭘까요. 바로 우리 눈앞에 펼쳐진 세상(현상)이죠. 그 속에는 내가 아끼는 모든 게 담겨 있죠. 나의 가족, 나의 직장, 나의 친구, 나의 미래, 나의 재산, 나의 명예 등등. 그럼 그중 하나를 꺼내 보세요. 그리고 내 마음을 갖다 대세요. 애틋한가요, 살가운가요. 그렇다면 나는 이미 거기에 물이 든 거죠.

 

리안 감독은 그런물듦남녀의 사랑에 비유하더군요. 1930년대 중국 상하이가 배경이죠. 여주인공은 매국노를 죽이기 위해 그에게 접근하지만 그만 사랑에 빠지고 맙니다. 제어할 수 없는 속도로, 돌이킬 수 없는 강도로, 순식간에 물들고 말더군요. 그들의 사랑을 보면서 저는의 힘을 봤습니다. 무엇이든 빨아들이는의 강고함, 닥치는 대로 물들이는의 무자비함을 봤습니다.

 

그러나 부처의 말씀은 다르네요. ‘색즉시공(色卽是空)’이라고 합니다. 그 강고한도 본래 텅 빈 것이라고 하네요. 그러니에 사로잡히지 말라고 합니다. 오히려 그 너머를, 그 바탕을 보라고 합니다. 그래야본질을 본다고 합니다. 그래서 끊임없이를 살피라고 하네요. 내가 사랑에 물이 드는가, 내가 짜증에 물이 드는가, 내가 자식에 물이 드는가. 그걸알아차리라고 합니다.

 

그럼, 에서는 무슨 뜻일까요. 맞습니다. ‘계율입니다. 그러나 종교의 계율은계율을 위한 계율이 아니죠. 바로물듦을 막기 위한 계율입니다. ‘내가 물드는 걸 알아차리고, 물들지 않기 위해 깨어있으라는 게의 본뜻이죠. 물들기 전의 청정함을 안다면, ‘물듦은 정말 두려운 일이죠. 영화 속 여주인공도 마지막 순간까지물듦을 두려워하죠. 그렇게 버티고, 버티고, 버티다 결국 무너지죠. 그래서 영화의 결말은 애잔합니다. ‘물듦’에 무릎 꿇은 인간사가 보이기 때문이죠.

 

그래서일까요. 부처는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과 같이 가라고 하셨죠. 또 예수는깨어있으라고 하셨습니다. 서산대사는 『선가귀감』이란 책에서 이렇게 말했죠. ‘생이란 한 조각 구름이고, 죽음은 한 조각 구름이 없어지는 것이다.’ 구름이 없어지면 무엇이 남을까요. 창공이죠. 원래부터 존재하던 푸른 창공. 그러나 우리가 한 조각 구름에 물들어 버린다면창공을 볼 수 없습니다. 구름만이세계의 전부라고 믿으니까요.

 

그러니 물들지 말아야죠. 그래야만 구름 속에서 창공을 보고, 창공 속에서 구름을 보게 되죠. 그럴 때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도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구름만 붙든다면색즉시색(色卽是色)’에 머물고 마는 거죠. ‘을 찍고 돌아오지 않는 모든은 한 조각 구름일 뿐입니다.

 

리안 감독이와호장룡의 대나무 숲에서 보여준속의 고요함,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보여준 로키 산맥의 설산과 푸른 창공을 보세요. 그들은 결코 물드는 법이 없죠. ‘있는 그대로존재할 뿐입니다. 자신을 물들이지 않을 때 우리도 그들과 하나가 되겠죠. 그러니 오늘 하루도 살펴 보세요. ‘나는 언제, 어디서, 무엇에 물이 드나.’

 

백성호 기자     [중앙일보]


 

'ENJOY > 행위' 카테고리의 다른 글

Slumdog Millionare  (0) 2009.08.04
콜드 마운틴 (Cold Mountain, 2004)  (0) 2009.01.27
맘마미아 (Mamma Mia, 2008)  (0) 2008.09.15
페인티드 베일 (The Painted Veil, 2006)  (0) 2008.02.11
로스트 라이언즈 (Lions for Lambs 2007)  (0) 2007.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