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산성은 오산에 있다. 선조 26년(1593) 임진왜란 중에 권율 장군이 전라도로부터 병사 2만여 명을 이끌고 이 곳에 주둔하여 왜병 수만 명을 무찌르고 성을 지킴으로써 적의 진로를 차단했던 곳이다.
독산성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분명하지는 않으나 원래 백제가 쌓은 성일 것으로 추측되며, 통일신라시대나 고려시대에도 군사상 요충지로 쓰였을 것으로 본다. 선조 27년(1594) 백성들이 산성을 쌓고, 임진왜란이 끝난 선조 35년(1602)에 당시 부사 변응성이 다시 보수하고, 그후 정조 16년(1792)과 20년(1796)에도 다시 공사했다.
성 둘레는 3,240m이고 문도 4개이지만 성 안에 물이 부족한 것이 큰 결점이었다. 이런 결점때문에 이 곳에는 세마대(洗馬臺)의 전설이 있는데, 권율 장군이 산 위로 흰 말을 끌어다가 흰 쌀로 말을 씻기는 시늉을 해 보이므로 왜군이 성안에 물이 풍부한 것으로 속아서 물러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독산성을 따라 걷다보면 눈 아래로 평원이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길은 다소 높낮이도 있고 거친 흙길도 있으나 중간 중간 평탄 곳에는 포근한 풀밭들이 있어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걷다보면 성이라기 보다는 오솔길용 옹벽으로 착각할 정도다. 수더분하고 정답다. 아늑하고 편안하다. 성은 웅장하거나 광대할수록 항상 낯설고 거리가 있다. 그것은 위엄만을 나타낼 뿐 병사들의 위험을 감소시켜 주지는 못한다. 성이 더 높고 더 깊을수록 적들의 더 독한 공격만 있을 뿐이다.
독산성은 성을 따라난 오솔길을 안정적으로 받치고 있다. 전쟁용이라기 보다는 일상생활의 편의를 위해 만든 길 같다. 그래도 성의 모서리에 서면 어쩔 수없이 성 본연의 치열함도 스며있다. 피비린내 나는 성이 아니라,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맞서는 병사들. 이들에게 이 성은 작은 안도감과 포근함을 주었을 생김새다. 병사들의 독한 땀 냄새가 어디선가 풍겨지고 찌들고 헤져버린 무명 저고리, 날카로와 긴장감이 흐르는 창검, 무수다발 같은 머리카락, 흐트러진 의관들이 보이는 듯하다. 이곳에 엎드려 호흡이 멎을 듯한 공포 속에 끝없이 몰려드는 적들을 상상하다 죽음의 그림자를 느끼며 등골에 식은 땀을 흘렸을 사람들… 죽는 사람이나 죽이는 사람이나 살기에 차있기는 마찬가지겠지만 비통해야 할 가족이 있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보적사는 독산성 창건 당시 성안에 세워졌다 한다. 그리 크지 않은 절이다. 이것 저것 나름대로 노력을 많이 만들어 놨으나 미니멀리즘이 독산성에 잘 어울리리라. 세마대에 이르는 길도 어수선하기는 마찬가지다. 보행로를 정비하고 어울리게 조경을 하면 황폐한 분위기를 덜 수 있을 텐데…
독산성에서 조금 올라가면 산 정상이 따로 있다. 양산봉이라 했던가. 성보다 그리 높지도 않고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다. 그곳에서 밑으로 내려가면 산림욕장 과 극기시설, 체력 단련시설, 야외 교육장 등 드믄 드믄 설치되어져 있다. 극기시설은 관리가 안되어 밧줄이 낡고 끊어져 있다. 이곳에서 물향기 수목원까지 연결되는 코스도 있다고 한다. 이곳 산림욕장은 그리 울창하거나 길지는 않았다.
세마대
세마대 누각안에 새겨진 닭
보적사 와 성문
보적사
성문 문턱에 돌확처럼 파여진 곳에 장식된 꽃들
삼림욕장
산림욕장내 극기훈련용 시설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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