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화예술단체인 국제앙드레말로협회는 '2013 올해의 작가'(미술 분야)에 문창진(61) 차의과대학교 부총장을 선정했다. 문호 앙드레 말로를 기려 창립된 이 협회는 그해 가장 뛰어난 성과를 거둔 한 사람에게 올해의 작가상을 수여한다. 한국인으로선 문 부총장이 첫 수상자다. 전업 화가가 아닌 사람이 선정된 것도 극히 이례적이다. 그는 식약청장과 보건복지부 차관을 지냈고, 요즘은 대학에서 보건정책론을 강의한다.
문 부총장은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앙데팡당(independants·독립미술)전에 '숲속에서 숲을 보다'라는 여섯 점의 연작을 출품했다. 협회는 강렬한 색채와 독창성을 높이 평가했다. 앙데팡당전은 고흐·세잔·마티스·샤갈 등 거장들이 거쳐 간 살롱전이다. 그는 "사실은 출품 권유를 받고서야 앙데팡당전에 대해 알게 됐다"고 했다.
문창진 차의과대 부총장이 과천 자택에서 자신의 작품‘숲속에서 숲을 보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서울대공원 근처 숲을 그린 작품이다. /이태경 기자
어릴 때 그의 꿈은 화가였다. 경남고 재학 시절 미술 선생님이 재능을 알아보고 미대를 권했지만, 형편이 넉넉지 않아 부모님이 허락하지 않았다. "미술 배우면 극장 간판 그리는 줄 알던 시절이잖아요. 대학에 가서 혼자서라도 그림을 배우자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1972년 서울대 사회학과에 입학했다. 군 복무 중 부친이 돌아가셨다. 가장이 된 상황에서 그림 공부를 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1978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보건복지부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다.
다시 붓을 잡은 것은 1980년이다. "창경궁에 갔는데 어린애가 스케치북을 쥐고 끙끙 앓더군요. 밑그림을 그려줬죠. 이걸 본 어떤 미대생이 관심을 보이더라고요." 3개월간 그 미대생에게 유화 과외를 받았다. 처음 그려본 유화고, '미술 교육'도 이것이 전부다. 그는 '그림 잘 그리는 사무관'으로 소문났다. "1983년 보건복지부가 과천으로 이전을 하는 날이었죠. 고사상을 차리고 사진기자들도 와 있는데, 돼지머리를 준비하기로 한 직원이 납작하게 누른 머리를 들고 나타났어요. 즉석에서 돼지머리 그림을 그렸어요. 다음 날 복지부 고사 상이 화제가 됐어요."
이후 그는 틈틈이 그린 작품으로 '공무원 미술대전' '목우회 공모전' 등에서 입상했다. "대한민국 미술대전에 출품한 적도 있지만, 입선에 실패했죠. 욕심이 나서 미대 교수에게 정식으로 그림을 배우고 싶다고 했는데 제 작품을 보더니 '독창성을 해칠 수 있으니 배우지 말라'고 하더군요."
문 부총장은 1980년대 후반 시카고대에서 보건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0년대 초엔 제네바 한국대표부에서 참사관으로 근무했다. "어디를 가던 먼저 그 도시의 미술관을 찾았어요. 내 방식으로 대가들의 화풍을 응용해봤어요." 제네바 시절엔 프랑스 엑상프로방스의 숲, 스위스 레만호, 이탈리아 베네치아 종탑, 핀란드 시베리우스 공원 등을 화폭에 담았다. 이를 본 제네바의 한 갤러리가 초대전을 제안하기도 했다. 제네바 대표부 건물엔 고(故) 백남준·이대원 선생의 작품과 함께 그의 작품이 걸려 있다. "인테리어 담당 교수가 제 그림을 보더니 전시하고 싶다는 거에요. 유명 작가 작품과 나란히 걸린다는 생각에 자랑스럽게 걸어놓고 왔는데…. 이제는 찾아오고 싶어도 어쩔 수 없네요. 하하."
그는 2008년 공직을 떠나 대학으로 옮겼다. 그제야 첫 개인전을 열었다. 공직자는 개인전을 해선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작품이 아닌 직위를 보고 사려는 이가 있을 수 있고, 뇌물이나 청탁 수단이 될 수도 있다는 것.
"어린 시절 꿈을 포기할 수 없어 그려온 것뿐인데 너무 큰 상을 받게 돼 기쁩니다. 은퇴 후에는 작품에 전념하고 싶어요. 그러다가 세계적 미술관에 제 작품이 소장되면 더 멋있겠죠."
조선일보 2014.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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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 정규 교육은 자칫 독창성을 해칠 수도 있다.
- 공모전은 공모한 사람만을 평가한다. 평가를 받기 위해선 남 앞에 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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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전에 떨어져도 다른 공모전은 된다. 미술에는 정답이 없다. 평가는 공모전마다 다르다.'ENJOY > 미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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