샹그릴라란 티베트어로 ‘마음 속의 해와 달’이라는 뜻이다. 여러 소수 민족들 중 티베트족이 43%로 티베트문화가 지배한다. 도시 평균 해발고도가 3,500 m에 가까운 고산지대다. 제임스 힐튼은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 (Lost Horizon, 1933)에 서 샹그릴라를 이상향으로 묘사했다. 중국이 그 명성을 선점하고자 2001년 이곳 지명을 샹그릴라라 개명했다.
이곳은 깊숙한 내륙이지만 나파해가 있다. 바다처럼 너른 평원이다. 초원에는 멀리 말들이 뛰놀고 야크 떼가 방목되어져 있다. 호수도 있다지만 거기까지는 가지 못했다. 대신 바람이 타르초와 룽다에 빼곡히 적혀있는 경전을 읽어주는 소리를 들었다. 돌리기만 하면 경전을 읽는 것과 진배없다는 마니차와 함께 너무 쉽게 수행하는 게 아닌가 하는 다른 생각이 들었다. 다름을 인정하자.
5대 달라이라마가 포탈라 사원을 본 따 이곳에 송찬림사를 만들고 평생 기거했다. 언덕배기 경사를 이용하여 계단을 만들고 정상에 불상을 모셨다. 계단 양쪽으로 부속 건물 및 스님들 거주 주택들이 빼곡이 들어서 있다. 불당 안으로 들어가면 거대한 3개의 좌불상이 모셔져 있다. 과거불, 현재불, 미래불이란다. 우리의 불당과는 확연이 다른 티베트 불교만의 독특함이 잘 드려나 있다. 꽃이 귀한 탓에 수유로 만든 꽃으로 장식되어져 있다.
티베트 불교는 손챈감포 왕 때 불교에 심취한 당나라 문성공주가 시집을 오면서 전파되었고 티베트 엘리트 700여명을 인도에 유학을 보내 불교를 국교로 받아들였다. 티베트의 토착종교와 섞인 불교지만 인도에서 아랍, 동남아시아, 중국 등을 거치면서 변질된 남방불교보다는 더 정통적이라 주장한다. 변방 불교라 생각했던 티베트 불교가 그렇지 않다는 점에 충격을 받았다.
불당 안에서는 향을 피지 않는 대신 외부에 화덕을 마련하여 생 소나무 가지를 태운다. 연기를 많이 내기 위함이란다. 마니차를 돌리는 곳도 있다.
송찬림사 주변 동네 길에서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자기자신을 무한히 낮추면서 불법승 삼보에 최대의 존경을 표한다. 그 사람들 얼굴은 하나같이 순하다. 무엇을 원하기보다는 해야 한다는 경건함이 묻어난다. 천여킬로 떨어진 고향에서 포탈라궁까지 일년여 오체투지로 오는 다큐멘타리를 본 적이 있다. 티벳인들이 타르초, 마니차등으로 쉽게 수행한다는 내 생각은 성숙하지 못한 생각이었음을 깨달았다. 사진에 담기에도 미안했다.
티베트 동네 민가들은 하나같이 컸다. 일층에는 가축을 키우고 이층에 기거하고 다락은 건조한 식량을 보관한다. 거주공간은 원룸처럼 탁 트였다. 한편에는 소규모 법당도 차려져 있고 차를 끓일 수 있는 난로도 있다. 모든 생활을 여기서 한단다. 요즘은 일층에 침실들을 마련하는 추세란다. 수유차와 함께 티베트식 케익, 미숫가루를 곁들이니 맛있다. 티베트 인들은 하나같이 웃고 선한 인상이다.
중전고성은 이층 기와집들로 이루어진 큰 동네다. 건물마다 일층은 상점으로 개조되어 옛 정취의 고즈넉함이 없다. 하릴없이 진열된 상품들을 보다가 광장(사방가)에 이른다. 산에는 세상에서 제일 큰 황금색 마니차가 돌아가고 대불사가 보인다. 산 정상에 오르면 변질되지 않은 멋진 고성의 상층부들이 조망되리라 여겨지지만 시간이 없어 아쉽다.
티베트 문화에는 독특한 점들이 있다. 일부다처제와 일처다부제가 혼재한다. 우리 시각으론 비도덕으로 보이지만 이들에겐 생존전략이다. 인구증가율이 낮은 이들에게는 핏줄을 잇는 게 중요했다. 일부다처제는 여자들이 자매간이고 일처다부제는 남자들이 형제간이다. 집에는 남녀 한 명씩만 있다 한다. 나머지 남자든 여자든 유목으로 장기간 나가고 남자는 몇 년을 승려 생활을 한다. 죽은 뒤 육신을 처리하는 방법 중 조장이 있다. 예식이 끝난 후 산 봉우리에서 육신을 토막내어 새가 먹도록 한단다. 새들이 깨끗이 먹어치우면 마지막까지 보시를 잘 했다고 믿는다. 주변 산 봉우리마다 조장터가 멀리 보였다. 하늘에 유난히 맹금류가 많이 날고 있었다. 이들 문화가 이상하게 보이는 건 사는 방법들이 다름에서 오는 것이다.
상그릴라가 고원 도시 탓에 아내가 고산병에 시달렸다. 백두산이 2,750 m인데 비해 이곳 평균 고도는 3,459 m이니 무리도 아니다. 머리가 어지럽고 메스껍고 잠을 못이루었다. 다행히 나는 느끼지 못했다. 아내는 저녁도 제대로 못먹고 집에 가고 싶다고 한다. 아침을 거르고 돌아다니자 다행스럽게도 점차 나아졌다. 오후에 리장으로 내려가니 회복되었다.
여강에서 샹그릴라 가면서 휴게소에서 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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