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 만에 전자레인지를 바꿨다. 예전에 쓰던 전자레인지는 대학동기들이 신혼 집들이 오면서 선물로 받은 것이다.
그 날은 길동 전세집 신혼집이었다. 사라져가는 풍습이지만 꺼꾸로 잡고 발바닥을 때려 당황했던 일, 동기들 성화에 아내가 '낙엽이 우수수...' 하는 썰렁한 노래를 불러 분위기를 얼어붙게 했던 기억 (이것은 후에 아내를 놀릴 때 많이 써먹었다) 들이 싸하게 생각난다.
기술 발전에 따라 전자제품의 수명은 계속 짧아진다. 휴대폰, 컴퓨터의 경우 고장보다는 성능이 느려져 바꾸게 된다. 그럼에도 전자레인지는 36년을 썼다. 용량은 조금 딸렸지만 고장이 난 것은 아니다. 그냥 변화를 주고 싶었다.
뭔가 허전하다. 오랫동안 눈에 익어 편안하기도 하지만 결혼 집들이의 오래된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물건이기도 했다. 물론 가끔 기억을 리프레쉬 하지 않았다면 잊어버렸을 지도 모른다. 버리는 순간 이러한 스토리도 이러한 기억도 같이 잊혀지는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든다.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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