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파트엔 발코니 정원이 있다. 면적이래야 반평 남짓이다. 여러 관목을 바꿔가며 십여년 심어오다 재작년부터 수종을 허브로 바꾸고 레몬밤, 바질, 허브딜, 로즈마리를 심었다. 처음 해인 재작년에는 바질과 허브딜이 싹을 띄우고 잘 자랐다. 싱싱한 바질의 잎을 따서 스파게티에 넣어 먹으니 이태리 식당에서 먹던 지중해의 풍미가 느껴졌다. 허브딜로는 오이 피클을 담았다. 로즈마리는 다년생 식물답게 더디게 나오고 천천히 성장한다.
작년 레몬밤이 무성하게 나왔다. 어린 잎을 따서 말리고 보관했다가 차를 끓어 먹으니 향이 은은하다. 로즈마리도 제법 자라 키가 삼십센티 정도에 수형도 갖추었다. 향이 강한데 마치 솔 향기와 유사하다. 그런데 잘 자라던 바질이 손가락정도 나오곤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한다. 깍지발레 탓이다. 저항력이 있는 로즈마리와 레몬밤은 덜하지만 가끔 솜털이 발견되었다. 농약 없이 손으로 없애보지만 역부족이다. 결국 건실한 로즈마리 한 개만 남기고 없애야 했다.
금년 연초부터 바질을 여러 차례 파종했으나 싹이 나오지 않는다. 이른 봄에 레몬밤, 허브딜, 로즈마리를 파종하니 레몬밤이 무수히 나왔다. 남아있던 작년 뿌리에서도 새싹이 무성하게 돋아 나왔다. 허브딜은 여러 줄기가 연약하게 나오더니 그래도 실하게 성장한다. 로즈마리는 조그만 싹을 두 개 피우고 느리게 자란다.
올해 레몬밤, 허브딜 그리고 로즈마리에서 소소한 수확을 하고 있다. 레몬밤이나 로즈마리로 차를 마시고, 허브딜로 피클을 담그고 스테이크 요리에 로즈마리를 향신료로 쓰면 맛이 풍부해진다. 조그마한 정원이지만 기르는 재미도 있고 허브 향이 나는 음식과 차를 음미하면 초록 대자연에 있는 기분이 든다. 이제야 발코니 정원의 유용성과 즐거움을 제대로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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