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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균,쇠 (1997) / 재레드 다이아몬드 저 / 김진준 역

felixwoo 2022. 1. 14. 19:00

왜 각 대륙들마다 문명의 발달 속도에 차이가 생겨났을까?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이 의문을 풀기 위해 인간 역사를 추적하고 비교 분석하며 내린 추론은 그 사람들이 타고난 지능의 차이가 아니라 환경의 차이 때문이라 했다.

 

인간 사회의 궤적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적 요소들은 무수히 많으며, 대륙마다 제각기 그 양상이 다르지만 그 중 네 가지가 가장 중요한 차이점이다.

 

첫 번째는 가축화와 작물화의 재료인 야생 동식물의 대륙간 차이다. 세계 주요 농작물 12종 중 8종의 원시 조상 식물이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 자생하였지만, 아메리카는 감자, 옥수수, 폴리네시아는 사탕수수만이 있었다. 고대의 가축화된 포유류는 14종인데 유라시아에 13종이 있었지만 아메리카의 라마를 제외하면 그 외 지역은 전무했다. 

 

가축화, 작물화 된 동식물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는 제국, 쇠, 문자가 먼저 발달했고 가축의 강력한 무력과 동물에게서 얻은 병원균의 살상력으로 다른 지역을 정복하게 한다.

 

두 번째는 문명과 기술의 확산과 이동의 속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가축과 농작물은 위도에 따른 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유라시아는 주요 축이 동서 방향이며 생태적 지리적 장애물도 비교적 적었기 때문에 전파가 빨랐지만 아메리카나 아프리카는 남북 축은 확산과 이동을 더디게 했다.

 

세 번째는 각 대륙 사이의 확산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인데, 가축 작물과 기술을 축척하는데 보탬이 된다. 지난 6000년 동안에는 유라시아의 발달된 문명이 아프리카로 확산되는 것이 가장 쉬웠고, 아메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는 유라시아로부터 격리되어 있어 전파가 느렸다.

 

네 번째는 각 대륙의 면적 및 전체 인구 규모의 차이다. 면적이 넓거나 인구가 많다는 것은 잠재적인 발명가의 수도 많고, 경쟁하는 사회의 수도 많고, 혁신의 수도 많을 수 밖에 없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는 수천년이나 앞서갔으면서도 어째서 뒤늦게 출발한 유럽에 추월당하고 말았을까? 비옥한 초승달 지대는 가축화, 작물화에 적합한 동식물이 집중되어 있어서 다른 곳보다 몇천 년 일찍 출발할 수 있었지만, 그 선발 간격을 추월당한 뒤에는 더 이상의 지리적 이점이 없었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는 농업 개간이나 땔감으로 숲을 남벌하고 지나치게 많은 염소의 방목으로 자원의 기반을 스스로 파괴하는 생태학적 자살을 저지른 나머지 지금은 황무지가 되었다.

 

중국은 어쩌다 기술의 선도자 위치를 유럽에 추월당했을까? 중국의 만성적 통일과 유럽의 만성적 분열이 주는 ‘최적의 분열 원칙’ 으로 보인다. 정치적 통일은 한번 결정이 내려지면 돌이 킬 수 없는 것이 되고 만다. 15세기 초 중국에서 내려진 ‘해외 항해 금지’는 대항해 시대를 연 유럽에 뒤처지게 했다. 14세기에는 정교한 수력 방적기 개발을 포기함으로서 산업 혁명의 문턱에서 물러났고, 근대의 경우 문화대혁명의 광기 속에서 모든 학교가 5년 동안 문을 닫았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와 중국의 역사는 유익한 교훈을 던지고 있다. 상황은 변하는 것이며 과거의 우위가 미래의 우위를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두 지역의 직계 후손(현대 중국) 이든 일찍이 영향을 받던 이웃 지역의 국가(일본, 한국, 유럽)를 통해서 아니면 해외로 이주한 사람들(미국, 호주, 브라질)이 아직도 현대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셈이다.

 

어떤 지역의 일시적이고 사소한 문화가 그대로 굳어져 여러가지 중요한 문화적 선택을 하게 만들 수 있다. 카오스 이론처럼 작은 차이가 나중에는 거대한 차이로 변한다. 이러한 문화적 과정이나 개인적 특이성은 역사 예측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요소들이다.

 

인류는 70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기원했다. 오랜 시간 아프리카에 머물던 인류의 역사는 약 5만 년 전에 대약진하여 유럽과 아시아로 확산되었다. 아시아 확산의 한 줄기는 4만 년 경 인도네시아, 폴리네시아, 오스트레일리아에 까지 이동하였고, 다른 한 줄기는 아시아 대륙을 지나 초기 시베리아인들이 되었다. 이들은 알래스카를 통해 12천년 경에 아메리카를 건너와 남미 최남단에 도착한 것은 10천년 이전이었다.

 

16세기 스페인 피사로가 잉카의 왕 아타우알파를 어떻게 사로 잡게 되었을까? 피사오의 군대는 168명이었고 잉카의 군대는 8만명이었다. 피사오 군대는 스페인의 쇠 무기들, 갑옷, 총, 말 등이었지만 잉카의 군대는 돌, 청동기, 나무 곤봉, 손도끼, 헝겊 갑옷 등이었다. 장비의 불균형은 일방적인 살육전이 되었다.

 

잉카를 단기간에 굴복시킨 것은 유럽의 앞선 문물이었지만 장기간에 걸쳐 아메리카 원주민의 대부분을 몰살시킨 것은 유럽 고유의 전염병이었다. 유럽인들이 신세계를 식민지로 만든 직접적인 원인에는 총기, 쇠 무기, 말 등의 군사기술, 유라시아 고유의 전염병, 해양기술, 중앙 집권적 정치 조직, 문자 등이 있다.

 

말은 20세기 초반에 이르기까지 장장 6천년 동안 위력을 발휘한 군사 무기였으며 결국에는 모든 대륙에서 이용되었다가 종말을 맞이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에 이르러서였다.

 

수렵 채집민의 어머니는 야영지를 옮길 때는 몇 가지 소지품과 한 명의 아이만을 옮길 수 있었다. 그래서 금욕, 유아 살해, 낙태 등을 통하여 4년 정도의 터울을 유지한다. 정주형 사회에서는 어린이를 데리고 다니는 문제로 고민할 필요가 없으므로 농경 민족의 산아 간격은 약 2년이다.

 

수렵 채집민 사회는 모두가 먹거리를 얻어야 하지만 농경 사회는 정치적 엘리트 계급이 생겨 남들이 생산한 식량을 통제하고 조세를 징수하여 먹거리를 장만해야 하는 문제에서 벗어난다.

 

야생동물의 천국인 아프리카에서 왜 가축화된 동물이 없을까? 야생 후보종이 가축화되기 위해서는 많은 특성을 갖추어야 한다. 식성, 성장 속도, 짝짓기 습성, 성격, 겁먹는 버릇, 사회 구조 등 이 맞아야 한다. 이중 한 요소라도 결격이 되면 가축화 될 수 없었다.

 

근대사에서 인류의 주요 사망 원인이었던 천연두, 인플루엔자, 결핵, 말라리아, 페스트, 홍역, 콜레라 같은 여러 질병들은 동물의 질병에서 진화된 질병들이다. 동물에게서 인간에게로 옮긴 후 우리 몸에 맞도록 특성을 변화시켜 진화했다.

 

가축화가 빨랐던 유라시아인들이 가축과 밀접하게 살면서 동물에게서 각종 질병이 옮았지만 앓고 면역력이 생성되었다. 이런 연유로 소수의 유럽 이주민들은 유럽의 각종 병균을 접해 보지 못한 신세계 원주민들을 멸종시키고 그들을 교체할 수 있었다.

 

발명품의 전달과정은 세부적인 청사진을 구하여 그대로 복사하거나 변형시켜 사용한다. 기본적인 아이디어밖에 얻지 못한 경우는 세부적인 내용은 새로 발명한다. 이 경우 스스로 찾아낸 해결책이 첫 발명가의 것과 비슷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로마 알파벳도 오랜 기간에 걸친 청사진 복사의 최종 산물이었다. 알파벳은 BC 2천년에서 천년사이 시리아로부터 시나이 반도에 이르는 지역에 살면서 셈어를 사용하던 사람들이 창안했다. 이후 에티오피아 알파벳, 페니키아 알파벳, 그리스 알파벳 그리고 로마 알파벳으로 청사진 복사가 이어졌다.

 

인류는 수백만 년 동안이나 문자를 모르고 살았다가 불과 몇 세기의 간격을 두고 지중해 및 근동 지역의 사회가 모두 독립적으로 문자를 만들어낼 생각을 한꺼번에 하게 되었다. 정말 기막힌 우연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일리아스’와 ‘오딧세이’는 문자를 모르는 음유 시인들이 역시 문자를 모르는 청중들을 위해 짓고 퍼뜨린 것인데, 그로부터 수백 년 후 그리스 알파벳이 만들어지고야 문자로 옮겨졌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 라는 사례도 많지만 대부분의 발명품은 호기심에서 이것 저것 주물럭거리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개발했고, 그들이 염두에 둔 수요따위는 애초에 있지도 않았다. 일단 어떤 물건이 발명되면 그때부터 발명자는 그것의 용도를 찾아낸다.

 

산업혁명 이후의 기술 급증이 된 까닭은 기술이 자가 촉매 작용을 일으켜 시간이 갈수록 가속화되었기 때문이다. 기술이 스스로 촉매 작용을 일으키는 이유는 새로운 기술과 재료들이 재결합되어 다시 새로운 기술의 탄생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정부와 종교의 결합은 병원균, 문자, 기술과 함께 역사의 가장 광범위한 경향을 좌우하는 중요한 직접적인 요인이었다. 인간의 사회는 무리, 부족, 추장 사회, 국가로 크게 분류된다. 무리 사회는 수백만 년에 걸쳐 진행되었지만 그 이후의 발전은 지난 몇만 년 사이에 이루어졌다.

 

지배자(도둑 정치가)가 평민들보다 안락한 생활을 유지하면서도 대중의 지지를 확보하려면 1. 대중을 무장 해제하고 엘리트 계급을 무장시킨다. 2. 공물을 대중이 좋아하는 일에 재분배한다. 3.무력을 독점하고 공공질서를 유지한다. 4.정치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나 종교를 구성하여 사람들에게 타인을 위해 목숨까지 희생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한다.

 

대규모 사회가 복잡해지고 중앙 집권화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1. 서로 무관한 사람들의 갈등 해결 2. 효과적 의사 결정을 위한 조직화 3. 호혜적이고 재분배적 경제형태 4. 조밀한 지역에는 복잡한 조직이 필수적 이기 때문이다.

 

호주 원주민이 동남아시아 인들과 다른 까닭은 호주로 이주 당시 동남아시아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후에 대부분 중국에서 뻗어나온 다른 아시아인들로 교체되었기 때문이다.

 

마다가스카르 섬으로부터 이스터 섬에 이르는 지역의 오스트로네시아계 언어들은 모두 타이완에서 시작된 인구 팽창에서 비롯되었다. 남중국인들의 타이완, 필리핀, 인도네시아, 뉴질랜드 로 이어진 ‘오스트로네시아인의 팽창’은 인도양을 가로질러 경의롭게도 마다가스카르 섬에도 상륙했다.  

 

중국은 유사 이래로 거의 처음부터 지금의 중국이었다. BC 221 진시황이 정치적 통일을 이룩한 후 정치, 문화, 언어 측면에서 획일적이 나라가 되었다. 중국도 한때는 다양성을 가진 나라였을 것이다. 다만 중국이 다른 나라보다 훨씬 일찍 통일되어져 광활한 지역이 ‘중국화’되어져 균일하게 되었다.

 

원래의 아메리카 원주민 인구는 크게 감소하여 북아메리카의 경우 95% 감소하였다. 대신 유럽인, 아프리카인, 아시아인이 들어와 원주민을 대체했다. 수천개에 달했던 언어도 현재 187개만 남아 있고 그 중 149개는 노인들만 사용하는 사어에 가깝다.

 

세계 인류를 크게 여섯 가지로 구분할 때 AD 천년 당시 아프리카에는 다섯 인종 (흑인, 백인, 피그미족, 코이산족, 아시아 인종) 이 인종이 살고 있었다. 이렇게 다수 인종이 살았던 것은 지리적 환경이 다양하고 선사 시대의 역사가 길었기 때문이다. 북쪽에 백인, 사하라 남쪽에 흑인, 중앙에 피그미족, 남쪽에 코이산족 그리고 마다가스카르엔 아시아 인종이 분포했다. 과거에 흑인 노예들이 대량으로 미국에 들어온 탓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프리카 원주민을 흑인으로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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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10 여 년 전 처음 읽었을 때 저자의 통찰력은 많은 깨달음과 혜안 그리고 기쁨을 주었다. 다시 읽으니 처음 보는 듯 기억이 거의 나지 않는다. 이렇게 기억하지 못하면서 왜 책을 읽는지 가끔 회의가 느껴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