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양치질하면서 아래로 몇번, 위로 몇번, 옆으로 몇번 정해진 숫자대로만 한다. 빈틈없이 짜여진 일상을 반복하는 국세청 직원(稅吏) 헤롤드 크릭. 어느 날, 그는 자신의 머리 안에서 그의 행동 하나하나를 정확히 설명하는 어떤 여자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제과점을 세무조사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과자를 만들어 남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삶의 의미를 느끼고 하버드 법대를 중퇴한 파스칼. 제과점을 하면서 거지들에겐 무료로 빵과 과자를 준다. 그녀는 무자비하게 세금을 매기는 국세청에 저항하며 탈세를 한다. 헤롤드 클릭은 그녀를 보는 순간 반하게 된다.
환청 같이 들리는 어떤 여자의 목소리를 치료하기 위해 의사의 조언에 따라, 대학 문학전공 교수를 찾아 상담한다. 그 목소리는 항상 현재의 그의 생각을 정확하게 설명했다. 어느날 목소리는 그가 곧 죽을 것을 암시하는 게 아닌가! 이 황당하고 믿기 어려운 현실 앞에 헤롤드는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아 나서기 시작한다.
죽음을 벗어나기 위해 그는 생활을 바꾼다. 사망 위험성을 없애려 한번도 낸 적이 없는 휴가를 내고 집에서 꼼짝하지 않고 전화도 안받는다. 지금껏 해온 양치질하며 숫자 세기를 포기하고 기타를 배우기 시작한다. 출근 할 때 넥타이도 풀어버리고 사무실에서 걸어 다니는 계산기 역할을 했지만 이젠 아니다.
세무조사가 어렵도록 훼방을 노는 파스칼에게 원칙을 얘기하며 묵묵하게 일을 처리하는 헤롤드 클릭. 그녀는 그의 순수성에 측은함을 갖게 된다. 저녁 늦게까지 조사를 하고 가는 헤럴드를 위해 갓 구운 쿠키를 먹으라 한다. 헤롤드는 먹을 수 없다며 사겠다고 한다. 업무 원칙이고 그는 이를 지킨다. 파스칼에 대한 그리움은 더해지고 보고싶은 마음에 가게 근처를 배회하기도 한다. 그녀를 대하는 헤럴드의 모습은 경직된 세리 그 자체다. 하나 거기에는 원칙, 순수함, 그리고 따뜻함이 있다.
교수의 도움을 받아 우여곡절 끝에 찾아낸 환청 목소리는, 주인공을 항상 죽이는 비극만을 쓰는 소설가 카렌 아이플. 이번 소설의 주인공이 바로 헤롤드 크릭이었던 것. ‘세금과 죽음’ 이라는 제목이었다. 자기 소설의 주인공이 실재 존재한다는 사실에 소설가도 충격을 받는다. 멀쩡이 살아있는 사람을 죽여야 했기 때문이다. 이미 스토리는 정해졌고 타이핑 작업만 남았다. 수기 원고를 미리 본 교수와 헤럴드는 소설의 완성도를 높이려면 주인공이 죽을 수 밖에 없다는데 동의한다.
헤럴드의 손목시계가 먼춘다. 옆 사람에게 시각을 묻는다. 몇분 앞으로 맞쳐진 시계로 인해 그때부터 헤럴드는 운명의 목소리보다 몇 분씩 앞서게 된다. 출근하던 어느날. 자전거를 탄 어린이를 구하다 버스와 충돌한다. 그의 손목시계는 작살이 나고 그 일부가 동맥의 출혈을 막아 기적적으로 살아난다. 이는 소설가가 원고의 결말부를 이미 수정했기 때문이다. 헤럴드는 피스칼과 사랑의 결실을 맺는다.
참 특이한 소재와 딱딱한 세리를 진지하게 풀어냈다. 이타적인 삶에 즐거움을 느끼지만 불공정한 조세제도에 저항하는 파스칼. 부속품처럼 주어진 임무를 규칙적으로 수행하는 헤럴드. 헤럴드는 파스칼의 조세저항을 탈세로서 국가를 속이는 행위라고 말한다. 세무조사 과정에서 업주에게 조그마한 피해가 가거나 부당한 압력을 느끼지않도록 행동거지를 극히 조심하다. 선진국에선 그게 당연하고 원칙이다. 세무조사가 압력과 권력으로 이해되는 우리에겐 부러운 대목이다. 하지만 헤럴드는 파스칼의 탈세를 이해하게 된다. 빈민들에게 무상 제공하는 제과 매출를 의도적으로 누락시킨 것이었다. 둘의 입장과 주장은 충돌하지만 둘의 생각은 기본적으로 같다. 하지만 세상의 법은 다양한 사람과 사건에 앞서가며 이끌지는 못한다. 그 편차에서 생기는 갈등, 다툼의 대행, 부조리, 이해 그리고 위대한 사랑. 이런 메세지다.
남자 주연인 월 페렐은 코메디 배우라 한다. 무미건조한 표정은 세리의 인상 그 자체다. 어색하거나 과장된 감정 표출도 없이 평범한 에센스만을 연기함으로서 사실감과 흐뭇함을 더해준다.
별 기대를 안하고 본 영화인데 훌륭하다.
마크 포스터 감독 / 윌 페렐 (해롤드 크릭 역), 매기 질렌할 (안나 파스칼 역), 더스틴 호프먼 (쥴스 힐버트 박사 역), 엠마 톰슨 (안나 파스칼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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