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6월 중순. 수목원이 개장하고 얼마 되지 않아 간 적이 있다. 논밭 한가운데로 난 4-5km 되는 진입로는 차 한대가 지날만한 폭이였다. 차가 마주칠까 신경이 곤두섰던 기억이 있다. 보도와는 다르게 수종이 그렇게 많은 것 같지도 않았고 식물 안내 팻말이 그리 많지도 않아 뭐가 뭔지도 알기도 어려웠다. 어디가 풀밭인고 어디가 관리되고 있는 곳인지 구분하기 힘든 황량함 그 자체였다. 진입도도 그렇고 볼 것도 없는 그런 기억으로 인해 다시 가기가 마뜩치 않았다. 그게 18년 전이다.
이젠 수목원으로 제법 틀도 잡았고 특히 겨울시즌의 조명전이 인구에 회자된 탓인지 아내가 가잔다. 아들이 군 휴가 나오는 기간으로 잡았다.
진입로는 잘 닦겨진 왕복 1차선 포장도로로 바뀌었다. 초입부터 크고 잘 꾸며진 음식점, 카페들이 연달아 나오고 근사한 펜션들도 군데군데 있다. 한가했던 시골길이 번화하게 바뀌었다. 수목원은 전혀 달라져 옛 기억이 매치되는 곳은 없었다. 테마 별로 조성된 정원군들, 오두막, 한옥, 연못 등. 예전에 꽤 넓어 보였지만 지금은 오히려 좁아 보인다. 겨울이라 꽃도 나뭇잎도 없고 시에나, 엄버 색깔의 가지와 철 지난 메마른 잎만으로 우중충하다. 어둠이 깃들기 전이라 시커먼 전구 전선 다발을 갑옷처럼 두른 나무들이 애처롭다.
오후 5시 50분. 점등은 되었으나 아직 제 빛을 내기엔 날이 밝다. 안 보이던 사람들이 많아졌다. 오색별빛정원전을 보기 위해 저녁에 입장하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작은 성당이 있는 언덕 꼭대기로 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빛은 나타나고 나머지는 어둠 속에 숨는다. 연인들은 하트형 데코레이션 조명에서 사진 찍기에 바쁘다.
산에서 내려와 중심정원으로 갔다. 정원전의 하이라이트가 이곳에 있다. 조망대에 오르면 알록달록 화려한 전구들이 비져내는 전경이 가희 환상적이다. 빛은 어둠의 보색으로 가장 강렬한 대비도 되지만 조화롭기도 하다. 빛에 색을 더하니 꿈을 꾸듯 몽한적이다. 가끔은 나무들을 억세게 옭아 매고 있는 시꺼먼 전선다발이 오버랩되면서 씁슬하기도 했다.
겨울은 겨울이다. 요 며칠새 따뜻한 봄기운으로 옷 차림을 부실하게 준비한 탓인지 저녁 날씨는 제법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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