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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 (2022) / 정지아

felixwoo 2023. 8. 19. 15:54

빨갱이를 아버지로 둔 외동 딸이 치르는 아버지의 장례 일지다. 편기르기가 엄중하던 시절를 보낸 사람들은 빨갱이라는 단어의 무서움을 안다. 우리나라가 사회주의를 금기하고 한번 사회주의자였던 사람은 다시는 세상으로 복귀할 수 없도록 막았기 때문이다. 비근한 예로 가까운 친지 중에 빨갱이가 있으면 육사 또는 정보기관을 가지 못했다. 피로 연결된 사람들에게 연좌제의 고리를 씌어 평생 그를 원망하게 만들었다. 무척 잔인했던 시절이었다.

 

어머니에게 사회주의란 여자도 공부를 할 수 있는 세상, 가난한 자도 인간 대접받는 세상이었다. 일본 패망 시절 철도원으로 입사한 뒤 노조에 가입한 아버지는 동창생에 이끌려 사회주의자가 되었다. 빨치산끼리 속엣말이라도 하며 살라고 부모의 은사가 둘을 맺어줬다.

 

아버지의 십팔번인 '긍게 사람이제' ,  '사람이 오죽하면 그러겠느냐' 하는 징한 전라도 사투리는 모든 사람을 포용하고 모든 실수와 허물 심지어 배반까지도 덮을 수 있는 이상한 매력을 지녔다. 사회주의의 대의를 신봉하고 실천했던 아버지에게 노동은 친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인심은 잃지않았다. 어찌보면 모순적이고 유머같은 삶이지만 휴머니즘이 철철 넘치는 그도 사람이었다. 인민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평생의 짐에서 죽음이 그를 해방시켰다.